여성우선 정리해고에 여성계 반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됐다고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

올 2월 졸업을 앞둔 姜모 (22.여.K대4) 씨는 지난해 8월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S광고회사 공채에 합격했다.

3개월의 인턴기간을 거쳐 지난해 12월초 정식발령을 받은 姜씨는 그러나 첫월급을 받기도 전인 12월 중순 '대졸 여직원은 모두 해고하니 새해부터는 나오지 말라' 는 통보를 받았다.

남편과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A은행 창구직원 李모 (25) 씨는 최근 간부로부터 “정리대상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 는 귀띔을 받았다.

李씨는 “사내커플이라는 이유만으로 나가라고 할 수 있느냐” 고 항의했지만 “그럼 남편을 내보내란 말이냐” 는 면박성 대답만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로 감량경영의 압박이 가중되면서 인력축소에 부심하고 있는 각 기업이 여성을 감원대상 1순위로 지목해 사직을 유도하고 있다.

기업들은 “대량감원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생계책임이 가벼운 여성을 먼저 정리할 수밖에 없다” 고 해명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아이가 딸린 기혼여성' '부양가족이 없는 미혼여성' 등의 기준을 세워 해고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제휴직.지방발령 등을 통해 자진사직을 유도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중소업체인 H이벤트사는 지난해 12월 초 고졸출신 여직원 3명에 대해 무기한 무급휴가명령을 내려 사실상 해고했으며, 대형건설업체인 D건설도 지난해 12월 21일 3~6년차 여직원 11명에게 개별적으로 해고를 통보했으나 일부 여직원들이 출근을 강행하는 등 반발을 사고 있다.

또 광고대행업체 C, K사 등은 최근 여성이 많은 부서를 없애거나 대졸여성에게 사표를 받는 방식으로 인력을 감축했으며, D보험과 D건설도 자진퇴사하지 않는 여직원에 대해 지방발령 등으로 불이익을 주며 퇴직을 유도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단순직뿐만 아니라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도 확산되고 있어 IMF한파로 여성 취업인구가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여성.노동단체들은 곧 여성고용문제 전담기구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한국노총은 9일 민주노총 및 여성단체들과 함께 '여성노동자 고용대책위원회' 설립을 위한 공동회의를 개최, 여성 해고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여성근로자 부당해고사례 수집과 상담활동을 펴는 한편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부당해고를 강행하는 사용자에 대해서는 고소.고발 등 대응책을 강구중이다.

나현철·김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