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 흔들리는 농·어촌…사료·기름값 폭등에 집단파산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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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제통화기금 (IMF) 의 긴급 자금지원 사태와 환율 폭등으로 대변되는 국가신인도 추락의 영향이 농어촌에도 금융기관 대출중지.사료및 면세유 가격 폭등 등의 결과로 나타나면서 농업.축산.어업의 기초가 흔들리는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농어민의 집단적 파산까지 예고하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농어촌의 실상을 알아본다.

편집자

◇ 축산.양계 = 경북군위군의흥면수서리 權모 (37) 씨는 지난해말 사료값 인상으로 더 이상 돼지사육이 불가능하자 4백여마리의 돼지를 헐값에 팔고는 채권자들 몰래 야밤에 달아났다.

또 전북익산시 일대 양계장에서는 닭 3백여마리를 주민들에게 나눠 주는 사태가 벌어졌는가 하면 축산시장에서는 소들이 무더기로 출하되는 바람에 소값 (5백㎏) 이 지난해 10월에 비해 50여만원이 하락한 2백만원까지 떨어져 생산비에도 못미치고 있다.

경북군위군효령면 효령양축회 洪여흠 (45) 회장은 "사료값은 오르고 돼지값은 최저 생산비 16만원보다 4만원이 싼 12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면서 “이같은 추세가 3개월 이상 가면 돼지 축산농은 완전히 붕괴된다” 고 말했다.

산란용 닭 12만마리를 키우는 춘천양계의 경우 사료 파동이후 3만마리를 긴급 처분했다.

3~4개월은 더 달걀을 생산할 수 있지만 사료를 감당할 수 없어 정상가 (1㎏당 7백원) 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백원에 출하할 정도로 사정이 급박했다.

지난해 11월에 비해 돼지 사료값은 6천6백70원에서 9천6백원, 닭사료는 5천6백원에서 7천9백60원, 비육소사료는 5천1백40원에서 7천3백30원으로 42% 이상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남지역의 경우 소.돼지.닭 1천56만마리를 기르는 12만2천여 축산농가가 한달동안 부담하는 사료값이 5백58억원에서 7백90억원으로 2백32억원이 증가했다.

◇ 비닐하우스 = 비닐하우스 재배농가의 경우는 유류가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농업용 면세유 가격이 지난해 11월 ℓ당 2백69원에서 연말에는 5백1원으로 86% 상승, 원예농가 경영비중 광열비가 30~40%나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전남강진군작천면야흥리에서 비닐하우스 6백여평에 오이를 재배하고 있는 金경흠 (57) 씨는 "추운 날 2백ℓ 한 드럼씩 사용하는 경유값이 지난해 4만원대에서 10만여원으로 올랐지만 오이값은 20㎏ 한 상자당 3만5천원에서 2만5천원으로 떨어졌다" 며 "설상가상으로 농협대출금 3천만원에 대한 금리까지 오를 것이라는 소문에 밤잠이 안온다" 고 털어놓았다.

재배농가들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하우스안 온도를 섭씨 14도에서 7~8도로 낮췄고 농축산 농가들도 사료 감량과 함께 볏짚.콩깍지 등 각종 농업부산물을 30% 이상 사용하는 등 비상대책에 나섰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 어업.양식장 = 원양업계의 경우 환율폭등으로 달러로 지불하는 해외어장 입어료와 출어경비 부담이 2배 가량 늘어난 반면 불황으로 고기값은 폭락해 출어를 포기하는 어선이 늘고 있다.

원양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원양어선 97척이 출어했던 대서양 포클랜드해역에 올해는 20여척 정도만 출어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조기.오징어.갈치 등을 잡는 트롤어선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연간 7~8회 출어하는 트롤어선의 경우 연간 어장 입어료 50만달러를 비롯해 달러로 지불하는 기름값.운반료 등의 조업비용 부담이 환율폭등으로 지난해보다 2배나 커졌다.

연안어업이나 양식장의 어려움도 이에 못지않다.

20여년째 멸치잡이 선단을 운영하고 있는 통영 덕양수산대표 鄭종정 (51) 씨는 "기름값이 2배로 올라 출어를 할 수록 손해보고 있다" 고 말했다.

통영시산양읍학림리 2㏊의 해상 가두리양식장에서 우럭 1백만마리를 기르고 있는 만성수산도 오른 사료값과 폭락한 고기값 때문에 울상. 양식장관리부장 김경만 (金敬萬.56) 씨는 "한달전만 해도 하루에 약3t씩 팔려나갔으나 지금은 5백㎏도 팔기가 어렵다" 며 일손을 놓고 있다.

◇ 대책 = 이처럼 최근의 기름값.사료값 폭등이 시설채소.원예농업과 축산업 전체의 붕괴를 예고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더욱 문제다.

사정이 다급해지자 농림부가 축산관련 정책자금의 원금.이자 상환기간을 3개월 연장키로 했다.

전남도는 총1백29억원의 보조금을, 충남도는 농민보호자금 2백억원을 긴급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전북도는 99년까지 사료안정기금을 현재 50억원에서 1백억원으로 늘릴 방침이지만 당장 겪고있는 붕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북성주군대가농협의 강도수 (姜道洙.43) 자재부장은 "농민들에게 대체작목 개발을 권유하려 해도 지금까지 투자된 돈이 많아 쉽지 않다" 며 “정부가 추진해 온 선진농업정책이 기름값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고 지적했다.

취재팀 = 허상천·김선왕·이해석·이찬호·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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