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에너지팀’이 과자 공장엔 왜 갔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21일 오전 10시 경기도 여주읍 ‘상일식품’ 공장. 직원 90여 명이 과자류를 생산하느라 분주한 이곳에 낯선 이들이 찾아왔다. 에너지진단업체 ‘SM&E’ 소속 정광주(37) 과장 등 세 명은 공장에 도착해 회사 측으로부터 지난해 연료 사용 내역과 생산설비 도면 등을 건네받았다. 이후 공장 내부를 돌며 에너지가 낭비되는 곳이 없는지를 살폈다. 전기 분야를 진단하는 SM&E 노호준(37) 대리는 “5개 생산 라인 중 2개만 돌아가고 있는데 나머지 3개 라인의 조명까지 켜져 있다”고 지적했다.

상일식품은 캔디류를 PL(유통업체 브랜드) 상품으로 신세계 이마트에 납품한다. 이날 점검은 이마트가 협력업체에 무료로 에너지 진단을 해 주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비용은 이마트가 댄다. 현장 점검 후 정 과장은 “보일러를 500㎏·1000㎏짜리 두 개로 바꾸고 배출되는 온수를 재활용하는 시설을 만들면 연간 연료사용량을 9% 절감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상일식품 박상진 부사장은 “틈새 원가 절감 전략이 필요했는데 유통업체가 무료로 종합진단을 해 주니 산타클로스를 만난 기분”이라며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유통업체와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갑’으로만 여겨지던 대형 유통업체들이 협력회사를 찾아가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찾아가는 상생 경영’이다. 협력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면 제품의 원가가 낮아져 결국 자신들에게도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PL 제품을 늘리고 있는 유통업체들은 협력회사와 좋은 파트너십을 맺는 기회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하반기 PL 협력회사 26곳을 상대로 무료 진단을 해줬다. 지난 3월 2차 진단에도 50곳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이 중 14곳을 선정했다. 신세계 기업윤리실천사무국 윤명규 국장은 “협력회사는 규모가 작아 에너지 절감에 나설 인력이나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협력회사의 경쟁력도 높이고 친환경 경영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에 살갑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다른 유통업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직원들은 최근 서울 소공동 본사에서 강남구 신사동으로 이사했다. 각종 명품 매장과 브랜드 본사가 밀집한 거리와 가까운 곳으로 옮긴 것이다. 협력업체가 찾아오면 만나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윤병진 CMD(선임 상품기획자)는 “거리가 가까워지면 협력업체 한 곳이라도 더 찾아갈 수 있고, 업무 처리나 의사소통도 원활해질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현대백화점도 올해부터 바이어와 협력업체 영업담당자 간 정기 간담회를 없애고, 바이어가 직접 협력회사를 방문해 업무 협의를 한다. 방문할 때는 비타민 음료를 사 간다 하여 ‘비타민 외근 제도’라고 이름 붙였다. 현장 상담을 거쳐 파악된 내용은 즉석에서 휴대전화 문자로 회사 담당자에게 전달한다. 이 때문에 백화점과 협력회사 모두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 홈플러스도 상품품질관리센터에 소속된 기술 매니저 30명이 매월 두 차례 이상 협력업체 공장을 찾아가 품질·위생·안전관리 등에 대해 교육한다.

김성탁·김기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