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본 중소기업계 1년…끝없는 부도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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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중소기업계는 97년 한해동안 내내 부도행진으로 얼룩진 사상 최악의 한해였다.

1월부터 한보그룹 협력사들에 몰아닥친 연쇄부도 태풍은 수십년 흑자기업들까지 쓰러뜨렸고 연말에는 난데없이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가 불어 닥쳐 업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97년에는 어려운 경영여건 가운데서도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수출이 상대적으로 늘어났고 정부 지원시책에 힘입어 벤처기업 창업 붐도 일어났다.

…한보철강 부도 직후 종금사의 자금회수로 문구업계 1위이던 마이크로 코리아가 쓰러졌고 진로.대농.쌍방울그룹 등의 침몰에 따른 연쇄부도가 줄을 이었다.

4분기들어 금융.외환위기로 돈가뭄이 심해지면서 20년 흑자기업인 주방기기 전문업체 셰프라인이 흑자도산했으며 제화업체 엘칸토, '잔피엘' 브랜드로 알려진 의류업체 부흥이 쓰러졌다.

또 올 상반기에 14억8천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삼성제약도 부도를 냈다.

'잘 나가는' 벤처기업이었던 태일정밀과 벤처기업 1호로 꼽히던 큐닉스 컴퓨터, 중소 컴퓨터 업체인 뉴텍컴퓨터도 시중 자금시장 경색으로 힘없이 무너졌다.

중소기업의 어음부도율은 지난해 연평균 0.14%였으나 올들어 1월부터 0.2%대로 높아졌다가 9월에는 0.31%, 10월에는 0.43%로 수직상승했다.

12월 한달동안 서울지역의 부도업체수는 26일 현재 9백90개 (금융결제원 집계) 로 전체적으로 10월 (5백60개) 의 2배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도가 급증한 가운데서도 올해는 기술집약적 벤처기업 창업에 대한 붐이 일어나 고용기반확충 및 경기회복에 한가닥 희망을 불어넣기도 했다.

…자금난과 생산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올해 중소기업의 수출은 대기업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지난 10월까지 중소기업의 수출은 4백68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늘어난 반면 대기업의 수출은 6백52억 달러로 5.2% 증가에 그쳤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이 11월 들어 외환부족과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 비율 기준을 맞추기 위해 중소기업의 수출환어음 매입을 기피하는 바람에 생산과 수출에 막대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노동부가 외국인 근로자의 불법체류 문제와 국제사회의 인권탄압 시비를 막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 를 도입하려고 하자 중소기업계가 높은 비용 부담 등을 들며 반발해 8~9월의 뜨거운 이슈가 됐다.

결국 이 제도는 중소업계의 반발에 밀려 채택되지 않았으나 외국인근로자 송출업체 선정과 관련한 통상산업부 간부등의 뇌물수수 사건이 불거져 송출업체 선정은 해당 국가에 맡기는 방식으로 정리가 됐다.

…많은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이 이익률 1% 미만의 '헛장사' 를 하거나 빚 때문에 쓰러진 가운데서도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고 한우물을 판 일부 중소기업들은 선전해 눈길을 끌었다.

기업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좋은 기업체질은 자기 스스로 만든다는 교훈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자동차.전자통신제품에 쓰이는 커넥터만을 생산하는 인천의 한국단자는 올 상반기에 매출 3백58억원에 60억원의 순이익 (순이익률 17%) 을 올렸다.

또 콘트롤 크림등 기초화장품만 생산하는 참존 화장품, 통신기기용 기판 (PCB) 업체인 안산의 대덕전자, 사무용가구 전문업체인 퍼시스, 신세대 패션 전문업체 ㈜한섬, 와이어 로프 등 강선만을 생산하는 고려제강 등도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이영렬.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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