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1달러=2천원 돌파 외환시장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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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환율이 달러당 2천원대까지 올라선 23일 외환시장은 물론 기업이나 개인고객들의 반응은 착잡한 것이었다.

달러를 파는 개인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달러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시장을 덮고 있었다.

○…이날 달러환율은 외환시장이 열리자 마자 폭등했다.

외환은행은 이날 매매기준율을 한국은행 고시 기준환율인 1천6백85원30전으로 내걸었다가 20분만에 1천9백50원으로 2백60원 이상 올려 고시했다.

따라서 고객들이 원화로 달러를 살 때 지불해야 하는 매매기준율은 달러당 2천67원으로 치솟았다.

오전중 시장에서 환율이 달러당 1천9백90원까지 오르자 일반 시중은행들은 기준환율을 정하지 못하고 은행간에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고민하는 모습.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는 대 (對) 고객 환율이 약 40분 가량 고시되지 않아 환전하기 위해 기다리던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외환시장이 혼란해 기준환율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면서 "이렇게 환율 급등이 계속되면 은행의 외환업무 자체가 방향을 잡지 못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이 달러당 2천원대를 넘어섰지만 기업과 개인들은 보유 달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 신한은행 명동지점의 창구직원은 "오늘 환율이 많이 올랐다곤 하지만 지난 며칠간 계속된 상승세가 이어진 것 뿐이지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다" 면서 "달러를 파는 사람이 전혀 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는 "이미 달러를 팔 사람은 다 팔았고 지금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원화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내놓지 않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오전에 달러를 팔려고 나왔다가 환율이 생각보다 오르자 더 오를 것 같은가 물어본 후 그냥 돌아간 고객도 꽤 있었다" 고 말했다.

○…그동안 뉴욕.홍콩.런던 등에서 자유롭게 달러차입을 해와 별 어려움을 겪지 않던 외국계 은행들도 환율이 이 정도에 이르자 걱정하는 모습. 한 외국계 은행의 외환딜러는 "달러 조달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면서도 "기업의 부실이 심해지면서 국내 영업부문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고 털어놨다.

그는 "환율이 계속 오르면 수입은 물론 수출도 막히니 이 상황에 대책이 없어 보인다" 고 말했다.

외환딜러들은 그러나 앞으로 환율이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들. 시중은행 한 딜러는 "미국 등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건이 될 때까지 상황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같다" 면서 "우리는 그들이 돈을 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느냐" 고 말했다.

○…무역업체들은 "최근 환율폭등은 수출확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수출용 원자재를 수입하지 못해 실제 수출실적은 지난해 수준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환율이 2천원을 넘어서면 수입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부도를 낼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걱정했다.

○…은행들의 네고 거부로 일본 상사를 찾는 수출업체들도 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상사들은 대부분 국내 업체들로부터 수출대행의뢰를 받는 건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E상사 한국법인은 "최근 몇건의 수출의뢰를 받았으나 의뢰회사의 신용관계 등 기초조사에 시일이 걸리는 만큼 당장 거래하기는 어렵다" 고 말했다.

○…은행의 자금회수로 기업들의 자금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우전자는 "수입자재 대금 결제액이 많을 때는 하루 1천만달러까지 몰리고 있다" 며 "내년초에 해외증권 결제 등 외화수요가 많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주요 그룹들은 또 "지난주까지만 해도 어렵게나마 자금을 조달했지만 이제는 기업의 정상운영이 어렵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도 대책이 없는데 기업인들 뾰족한 방법이 있겠느냐" 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기업들의 외채지급불능이 불가피할 것" 이라고 우려했다.

제지업체들은 "현재 확보해놓은 원료는 15일~1개월치 밖에 없어 더이상 원료 수입이 안될 경우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 이라고 말했다.

이원호.유권하.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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