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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대통령의 몫과 야당의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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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꼭 1년 전인 2008년 4월 20일(미국시간 19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 회담을 마치고 나온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생각하느냐”고 한 특파원이 예정에 없던 질문을 던지자 이같이 답변한 것이다.

충격적인 발언에 놀란 기자(당시 특파원)의 눈은 배석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향했다. 유 장관은 급히 펜을 꺼내 뭔가를 메모한 뒤 대통령 측에 슬쩍 전달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간담회 말미에 “국제법상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며 “(아까) 답변을 정정하니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신문 1면 톱감이었던 대통령의 발언은 그래서 보도되지 않았다.

이날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청와대에서 북핵 정보를 여러 번 보고받은 이 대통령이 나름의 판단을 내린 가운데 그렇게 답변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정보를 듣고 어떤 판단을 내렸든 대통령이 그렇게 발언한 건 분명 안 되는 일이었다. 대통령이 북한의 핵개발 수준을 판단하는 것과, 그걸 입으로 공식화하는 건 정치·외교·군사적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북한 관련 발언으로 몇 차례 홍역을 치른 이 대통령은 요즘엔 비교적 안정된 대응을 보여주는 듯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동을 걸었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에도 신중히 접근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미 이란·쿠바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북한이 여름까지로 예상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리뷰(재검토) 기간을 틈타 몽니를 부리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결국 북·미 양자대화를 통해 제2의 제네바 협약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도 단선적인 상호주의 원칙이나 국내 정치를 의식한 좌고우면식 대응에서 탈피해 북한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그 전략적 접근의 바탕엔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대통령의 통찰력과 인내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당인 민주당도 미사일 발사나 개성공단 볼모화 같은 북한의 잘못은 단호히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권부 내 협상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정부가 대북 협상 입지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부도 민주당이 지난 10년간 축적한 대북 대화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도 북한통인 민주당 인사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북한과 대화 채널로 써 성과를 본 선례가 있지 않는가.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