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TV 신상옥 감독 작품 3편 연속 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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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남한→북한→미국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지닌 신상옥.최은희부부의 60년대 대표작 3편이 오랫만에 안방시청자들을 찾아온다.

KBS1 - TV는 매주 일요일 밤 10시35분에 시작하는 '명화극장' 시간에 '한국영화 명작초대' 시리즈를 기획, 신상옥 감독의 63년작 '쌀' (21일).64년작 '벙어리 삼룡이' (28일).61년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사진.내년 1월4일) 를 연속 방영한다.

외국영화 수입을 줄이기 위해 한국영화를 증편한다는 외화절감 차원에서 마련된 기획이긴 하지만 극장 스크린이나 비디오로 접하기 어려운 우리 고전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쨋든 반가운 일이다.

78년 납북이전의 한국영화사는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영화사였다고 말할 정도로 신상옥 감독은 한국영화의 대중성과 예술성, 그리고 국제성의 확보에서 신화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영화법 제정에 관여하는 등 정치적인 행적 때문에 작품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또한 어느 정도 유보되고 있는 형편이다.

시리즈 첫 작품인 '쌀' 은 갓 출범한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어느 정도 비호를 받았던 신감독이 당시 새마을운동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만든 작품. 전북 무주구천동 산골의 가난한 농민들이 오로지 벼농사를 한번 지어보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마침내 산을 뚫고 물줄기를 끌어 논을 일구어낸다는 이야기다.

신영균.최은희.김희갑이 출연한다.

신감독은 멜로드라마.사극.문예물.공포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지만 주로 봉건적인 윤리관에 얽매여 불행을 겪는 여성주인공을 통해 근대와 전근대적 가치관의 충돌을 담아냈다.

이는 산업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 60년대 한국 사회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벙어리 삼룡이' 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도 그런 계열의 작품. 나도향 원작의 '벙어리 삼룡이' 는 마음씨 고운 마님과 벙어리 머슴 간의 정신적인 사랑을 통해, 주요섭 원작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는 젊은 과부와 서울 손님 간의 억제된 관계를 지켜보는 어린 딸의 관찰을 통해 유교적 억압과 사랑의 본능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미장센의 대가' 라고 불렸던 신감독의 작품들인 만큼 세팅.조명.의상과 치밀한 영화적 공간의 연출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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