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중기 알찬 일터] 바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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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승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7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95%

3월 말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치과 의료기기 전시회인 인터내셔널 덴탈 쇼(IDS). 2년마다 열리는 이 전시회에 70개국 수백 개 업체 중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차린 바텍은 현장에서 200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 노창준(51) 회장은 “2년 전 IDS에 처음 참가했을 때만 해도 한국이 치과 의료기기도 만드느냐는 반응이 많았다”며 “2년 만에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물론 유수한 외국 기업으로부터 기술 제휴나 부품 공급을 요청받는 입장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기계 제조회사 임원과 몇몇 기업을 경영했던 그가 바텍을 맡게 된 것은 2001년. 1992년 바텍시스템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산업용 X선 장비 등을 개발했지만 당시 경영은 엉망이었다. 노 회장은 X선 기술을 살릴 방안을 찾다가 치과용 장비에 착안했다. 예전부터 쓰던 아날로그 방식의 X선 장비가 디지털로 변하던 시기였다. 목표는 제대로 정했지만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핀란드 헬싱키 경영·경제대학원 출신인 그는 인맥을 바탕으로 핀란드의 하드웨어 기술자,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자 등을 어렵사리 초빙해 관련 기술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연구진이 개발에 나선 끝에 2002년 국내 최초로 파노라마 진단기를 개발했다. 2005년에는 CT·파노라마·세팔로를 통합한 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2007년에는 진단기기의 핵심 부품인 디지털 X선 센서도 만들었다. 노 회장은 “때마침 임플란트 시장이 세계적으로 커지는 등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개발 초기 밤잠을 잊었던 연구진과 무명 회사 제품을 정성으로 판매했던 영업직원의 치열한 노력이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비직원까지 모두 정규직

거대한 의료기 시장에서는 ‘틈새’에 불과했지만 치과용 진단기기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을 갖춘 바텍은 순조롭게 성장했다. 매출액은 2006년 540억원에서 지난해 800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업종의 자회사 이우테크놀로지의 실적을 합치면 지난해 매출액이 1400억원을 넘는다. 2001년 바텍 인수 당시 54명이었던 직원 수는 현재 바텍 351명과 계열사·해외 법인을 합쳐 700여 명이다.

노 회장은 회사 경영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가 생각한 가장 중요한 보상은 ‘안정적인 일자리’ 그 자체였다. 바텍의 351명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다. 업무·생산직은 물론 관리나 경비직원들까지 모두 그렇다. 지난해에는 비정규직이었던 직원 4명의 신분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단기 업무에 일용 계약직을 쓸 때가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지난해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뀐 수입검사팀 조모씨는 “소속감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일이 더 즐겁고 열정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또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과거 신용 불량 상태에서 취업이 어려웠던 사람도 그동안 30명 가까이 채용했다. 그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주는 대신 직무와 성과에 걸맞은 연봉과 인센티브로 효율성을 높이면 된다”며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것은 기업의 임무며, 이를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사회의 자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공·학력 안 본다…직무 중심 인사관리

바텍은 수시 채용을 기본으로 한다. 요즘에는 업무가 늘면서 신입사원보다는 기계·전자·소프트웨어 등 연구개발 분야나 생산기술·해외 영업 분야의 경력자를 많이 채용한다. 주로 취업정보회사를 통해 필요한 경력을 갖춘 구직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적성검사와 면접을 통해 뽑는다. 홍보팀 김충환 차장은 “채용을 할 때 학력이나 점수화된 능력만 보지는 않는다”며 “전문화된 온라인 테스트를 통해 인성과 역량을 검증한 뒤 면접을 거친다”고 말했다. 입사 후에는 3개월 정도 적응 평가 기간을 거친다. 일종의 수습 기간이다. 개인의 역량과 인성 등을 평가하고, 높은 성과를 내려면 어떤 직무가 적합할지를 검토하게 된다.

바텍은 중소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체계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이 자랑이다. 신현관 경영기획총괄 부사장은 유명 컨설팅 회사 헤이그룹(Hay Group) 한국법인의 부사장 출신이다. 바텍에 대한 컨설팅을 했던 인연이 있는 신 부사장은 회사에 매력을 느껴 지난해 자리를 옮겼다. 그는 “바텍의 인사제도는 능력 평가는 물론 채용·배치·승진 등 모든 과정의 공정성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중소기업은 물론 국내 어떤 대기업보다 체계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 인사관리는 연공 서열이나 학력·능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직무 중심으로 짜여 있다. 개인 역량에 맞는 직무와 그에 걸맞은 연봉을 주고, 맡은 직무에서 얼마나 성과를 냈느냐를 엄격하게 평가해 추가적인 보상을 하는 체계다. 쉽게 말해 박사급 연구원의 연봉은 고졸 생산직보다 많지만, 고졸이라도 매년 높은 성과를 내면 연봉 인상이나 승진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업무를 가능한 한 계량화했다. 또 개인별·팀별로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만 한다. 남보다 잘하기보다는 스스로 세운 목표와 경쟁하라는 의미다. 성과가 나쁘면 원인을 분석해 적절한 직무로 전환 배치하거나, 필요한 교육을 받게 한다.



중소기업면에 소개된 기업은 중소기업중앙회와 인크루트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 곳입니다.



인재 채용은… 노창준 회장
장애우도 환영해요, 세상 넘을 꿈만 있다면

바텍에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77년도에 서울대에 입학한 노창준(사진) 대표이사 회장은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 현장에 직접 뛰어든 적이 있다. 그 뒤 회사원·경영자로 변신하면서 ‘운동’에 대한 열정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게 기업인의 사명이라는 ‘신념’으로 바뀌었다.

-일자리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데.

“다른 기업의 관리자로 외환위기를 겪었다. 당시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목숨을 끊는 사례도 봤다. 일자리가 개인과 그 가족의 행복은 물론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어떻게 그런 신념을 실천하고 있나.

“지속 가능한 경영을 통해 좋은 기업을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이 현명한 기업이라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없을 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도 많이 고용하는, 편견과 차별이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좋은 일터를 유지하려면 기업이 돈을 잘 벌어야 할 텐데.

“맞는 말이다. 특히 벤처나 중소기업이 제대로 수익을 내려면 강점이 있는 틈새 시장을 개척하되, 그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외형만 부풀려서는 소용이 없다. 핵심 기술을 갖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그런 강소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새로운 시장을 계속 개척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갖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다만 경쟁이 심한 기존 시장보다는 우리만 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을 찾아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을 밀고 나갈 것이다.”

-원하는 인재상은.

“세상을 상대할 만한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을 원한다. 특히 바텍은 해외 진출이 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그에 걸맞은 인재를 원한다. 언어 능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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