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G2’로 도약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뉴스 분석 최근 아르헨티나와 약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나라는?

금고가 비어 가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에 400억 달러를 출연하기로 한 나라는?

5년(2003~2007년)간 아프리카와 중남미·동남아에 747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한 나라는?

정답은 모두 중국이다. 최근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저임의 노동력을 앞세웠던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달 초 한 보고서에서 중국을 미국과 함께 ‘G2’로 명명했다. 세계의 주요 국가 두 곳으로 중국과 미국을 꼽은 것이다. “세계 경제가 회생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이달 초 주요 20개국(G20) 런던 정상회의에서 주인공은 단연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영국의 찰스 왕세자도 후 주석의 숙소를 찾아갔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중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라고 표현했다.

서방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중국에 구애를 퍼붓는 이유는 쑥 커버린 중국의 경제력에 있다.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액(1월 말 1조9460억 달러)을 보유한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경제의 ‘큰손’이다. 미국 자산만 1조4000억 달러, 이 중 7400억 달러가 미국 국채다.

이런 압도적 자금력에 힘입어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 가고 있다. G20 정상회의 직전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이 기습적으로 제기한 ‘새 기축통화’ 필요성은 금세 국제적 이슈가 됐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행보는 기민하다. 지난해 9월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홍콩·말레이시아 등 6개국과 6500억 위안의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휘청거리는 미국을 대신해 구원 투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대외원조는 훨씬 집요하고 치밀하다. 2003년 15억 달러에 불과했던 원조금액은 2007년 250억 달러로 증가했다. 올 1월엔 미주개발은행(IDB)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면서 특별기여금으로 3억5000만 달러를 한꺼번에 납부하는 통 큰 면모를 과시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다. 2002~2007년 산유국 베네수엘라에 대한 164억 달러 투자가 대표적이다. 통화 스와프·대외원조·투자 등 세 가지를 무기 삼아 천연자원의 보고이자 잠재적 시장인 아프리카·중남미·동남아 국가를 중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자 세간에선 개도국 사이에서 중국식 발전 모델의 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정부 주도로 자국 사정에 맞게 점진적 경제 개혁과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를 개도국들이 더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에선 그동안 개방·민영화·탈규제 등 신자유주의가 핵심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베이징 컨센서스에는 짚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강준영 교수는 “무엇보다 중국 경제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데 아직까지는 중국 경제도 미국 경제 회복에 목을 매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금융 시스템의 후진성과 통계의 투명성도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중국의 ‘질적 도약’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의 과제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