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명창' 탄생 눈앞에…추계예대 출신들 전국대회 휩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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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명창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어릴 때 명창의 집안 일을 거들며 구전심수 (口傳心受) 로 판소리 한 바탕을 배우는데 3~4년이 걸린다.

그후 토굴이나 절간.산속에서 혼자 독공 (獨功) 을 쌓으면서 '자기 소리' 를 만들어간다.

전국 규모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후에도 완창무대를 몇번쯤 치러내야 명창 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다.

개인적인 사숙 (私塾) 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판소리 교육이 대학에서 시작된지 22년만에 그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 75년 대학 최초로 판소리 전공을 선발하기 시작한 추계예대 출신 소리꾼들이 최근 전국규모 판소리 대회를 휩쓸고 있는 것. 판소리 전공 학사 제1호인 조영자 (曺英子.40) 씨는 지난 95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문 장원 수상자. 전주 태생으로 75년 추계예대에 입학한 曺씨는 박동진 명창을 사사했으며 88년 제주한라민요제에서 '육자배기' 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녀는 언니이자 스승인 조소녀 (曺素女.56) 씨와 함께 판소리 가문 출신이다.

94년 9월 국립극장에서 '춘향전' 완창무대를 가졌다.

지난 6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흥보가' 를 불러 장원을 차지한 전인삼 (全仁三.35.남원시립국악단 국악장) 씨는 근래 보기드문 남자 소리꾼. 지난해 작고한 강도근 (姜道根) 명창을 사사, 성량이 풍부하고 감정표현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6월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동편제 '흥보가' 를 완창했다.

역시 남원 출신인 김명자 (金明子.34) 씨는 86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국악고 판소리 전임교사로 있다.

82년 추계예대에 입학, 성창순 (成昌順) 명창을 사사했다.

추계예대 출신의 대약진에는 국악과 초대 주임교수였던 윤미용 (尹美容.국립국악고 교장) 씨의 공이 가장 컸다.

그는 방학 때면 판소리의 고장 남원.전주.목포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장학생을 모집했다.

그후 다른 대학에서도 잇따라 판소리 전공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김명자씨는 "당시에는 다들 어려운 형편이라 서울서 공부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습니다.

대학에 국악과가 있는 것도 몰랐고요. 일찍이 판소리 교육에 관심을 가져주신 尹선생님의 선견지명에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라고 말했다.

尹씨는 83년에 국악고 교장으로 부임, 이듬해부터 정악 (正樂) 의 본산인 이곳에서 속악인 판소리 전공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학력 위주의 선발방식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젠 판소리계 꿈나무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5월 서울국악대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이주은 (李朱恩.25) 씨는 국악고, 서울대 국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내년 2월 판소리 전공자로서는 첫 석사모를 쓰게 될 李씨는 동아국악콩쿠르에서 92년 학생부, 93년 일반부 금상을 차지했다.

국악고 3학년에 재학중인 이자람 (18) 양은 지난달 26일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명창 부문 대통령상을 받은 예비스타. 오는 12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심청가' 완창무대를 갖는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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