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앞도 안보이는 금융시장 대란…'긴축 불안' 너도나도 돈 확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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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시장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요즘은 기업투자가 위축돼 자금수요가 몰릴 때도 아니다.

그런데도 제도권 금리는 5년여만에 최고수준에 다다랐다.

사채 (私債) 금리는 더 뛰어 80년대초의 연 20%대에 육박했다.

금리가 뛰는 것은 한마디로 불안심리 탓이다.

금융기관.기업 모두 국제통화기금이 강력한 통화긴축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모두들 당분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돈을 풀지 않고 있고, 기업들은 당장 쓸 돈이 아니더라도 나중을 대비해 미리 자금확보에 나서고 있다.

반면 기관투자가들은 금리가 더 오를 때를 대비해 회사채.기업어음 (CP) 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

25일 발행예정이던 회사채는 모두 1천8백20억원어치였으나 실제 소화된 물량은 20%가 채 안되는 3백20억원어치에 그쳤다.

CP도 발행물량은 넘쳐나는 반면 은행신탁.종금사들이 외면해 유통수익률이 연 21%를 넘어섰다.

금융기관간에 돈이 돌지 않는 것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의 1차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종금사에 돈이 흘러들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기관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자금줄을 죄고 있다.

금리를 아무리 높여 불러도 막무가내다.

한국은행이 24일 2조6천억원, 25일 9천억원을 풀었어도 금리가 계속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이를 중개해 주는 시장기능이 마비된 이상 금리안정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금리가 오르면 환율이라도 내려줘야 할텐데 동반상승하고 있다.

국내금리가 이렇게 오르면 외국돈이 금리차를 노리고 들어와 환율을 낮추는 효과가 나오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에 금리가 아무리 높아져도 외국투자자들이 외면해 환율 안정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더구나 종금사들의 외화자금 수요는 계속 밀려든다.

기업들도 외화예금을 쥐고 풀지 않는다.

원화자금을 죄면 외화예금을 처분하는 기업들이 나오겠지만 금리가 더 오를까봐 그러지도 못한다.

이에 따라 시장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종금정리가 더 앞당겨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실 종금사들이 금리와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정리계획만 가시화하면 불안심리가 상당폭 진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시장 역시 최근 며칠간 사상 최악의 폭락사태로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25일엔 실명제 보완설로 대형주가 반등하면서 종합주가지수 폭락세는 일단 멈칫했지만 증시의 먹구름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사자' 주문이 자취를 감추면서 매매체결 기능이 마비상태에 빠진데 대해 증시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하한가에도 팔리지 않는 매물이 연일 홍수를 이루자 이러다간 증시시스템이 붕괴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차트 분석가들은 이런 공황에 가까운 시장상황 아래선 주가분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종합지수 400선도 지키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고 있다.

홍승일.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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