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연차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확대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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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치판의 부패상이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가 마침내 전직 대통령에게까지 이르렀다.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500만 달러를 준 것이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 측도 ‘열흘 전쯤 알았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여권 중진 김무성 의원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

사실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세간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대상이 될 것이란 추측이 파다했다. 일차적으로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세간의 추측이 설득력을 얻은 것은 정권교체기마다 늘 대형 정치자금 비리가 터져 나왔던 전례가 있어서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대권 경쟁자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현 자유선진당 총재)의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이어졌다. 노 대통령에게 대권을 물려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자금에 대한 수사도 이어져 측근들이 수감됐다. 거슬러 올라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안기부 자금에 대한 수사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박연차 회장에 대한 조사도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자금 추적이란 의혹을 받기 쉽다. 박 회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지난여름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시작됐다. 국세청 조사 결과가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이를 근거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비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비극이지만 현실이다. 만연한 부패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비리가 드러난 이상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

박 회장은 이미 지난 연말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준 500만 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게 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비의 귀재인 박 회장이 30대 청년사업가(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에게 50억원(당시 환율로 500만 달러)의 거액을 그냥 주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비리가 일파만파로 퍼져가는 현시점에서 우려되는 것은 검찰이 혹시나 정치적 고려를 해 수사가 불공정하거나 부실해질 가능성이다. 검찰이 야권과 여권 인사의 균형을 맞춰 번갈아 소환한다거나, 자의적으로 수사대상과 구속대상을 결정한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 여권의 실력자에 대해서는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마저 나오고 있다. ‘정치보복’ ‘표적수사’라며 항의하던 야당도 이젠 ‘여야 차별 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정부 고위 공직자, 그리고 검찰 내부 관계자로까지 수사대상이 확산될 경우 검찰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검찰은 엄정한 수사라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권력교체기에 정치바람 타고 적절히 타협한다는 오해를 더 이상 받아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 속에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은 검은돈과 이권을 주고받으며 흥청망청, 나라를 망하게 한 부패집단의 면면을 똑똑히 확인하고 싶어 한다. 검찰은 검은돈의 뿌리를 뽑는다는 각오로 수사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검찰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며, 현 권력자들의 비리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