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어린의 장래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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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배우며 가수인 도리스 데이가 처음 결혼한 것은 고교 재학중인 16세때였다.

상대는 그녀가 노래를 부르던 나이트클럽의 트롬본 주자 (奏者) .그러나 꿀맛 같은 신혼시절이 지나면서 다정다감하던 남편은 폭군으로 변했다.

폭력을 휘두르기 예사였고, 마약까지 강제로 먹였다.

결국 1년도 안돼 파경으로 끝났다.

그후 영화계에 데뷔해 명성을 떨치던 그녀는 56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 의해 '너무 많이 아는 사람' 이란 영화에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주연으로 발탁된다.

이 영화에서 주제가로 부른 노래가 유명한 '케 세라 세라' 다.

"내가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엄마에게 물었지/내가 예뻐질는지 부자가 될는지를/엄마가 대답하기를/될대로 되라지/무엇이 되든지간에/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게 아니니/될대로 되라지…. " 미래를 궁금해 하는 꿈많은 어린 소녀의 소박한 마음과 미래에 무엇이 되든지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엄마의 충고가 담겨 있다.

한데 이 영화와 노래가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케 세라 세라' 는 마치 미래를 포함한 어떤 일에도 자포자기하는 심리를 대변하는 말처럼 쓰여 왔다.

'케 세라 세라' 는 물론 미래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품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은 대개 '세속적인 부 (富) 와 명예의 축적' 으로 나타난다.

어른들의 탓인 경우가 많다.

'야망 (野望)' 이니 '웅지 (雄志)' 니 하는 것들이 어린이들에게 잘못 이해돼 지나치게 명리 (名利)에만 집착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동서양을막론하고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있어서의 '행복의 위계 (位階)' 를 만들면서 부귀영화를 최하위로 내려놓았다.

부귀영화는 삶의 가치관을 따지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버이들은 한결같이 자식들이 부귀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어린이의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요, 장군이요, 판.검사 따위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도 그 까닭이다.

최근 서울대 의대의 한 교수가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하위로 처진 반면 유명인과 부자가 1,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또한 요즘 세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식의 '케 세라 세라' 도 안되지만 구체적인 어떤 직업보다 삶의 진정한 가치관을 심어주는게 더욱 중요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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