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탈진과 탈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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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 친구집을 방문해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를 보게 됐다.

어린시절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필자로서는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과연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져 왔으며, 따라서 친구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교과서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교과서에는 낙동강 지역 경제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었다.

한국 지역 경제에 대한 구체적 수치들을 흥미있게 바라보면서도 한가지 씁쓸한 여운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이러한 내용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가.

낙동강 유역의 경제에 관한 내용을 공부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그에 반해 고등학생이 이해하는 데는 보다 적은 시간에도 충분하다.

학생들은 각 성장단계에 따른 학습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교육내용은 성장단계에 따라 차별화해야 한다.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은 현재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이 개혁에서 21세기를 내다보며 창조적 국민성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미래 지식사회의 산업에서는 창조성이 중시된다.

지식사회에 적응함에 있어 집단의식 고취나 보편 교육에 치중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서구식 개인주의의 접목을 통한 보다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인간을 양성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개혁주도자들은 미국의 빌 게이츠와 같은 천재가 일본에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천재는 집단 위주의 교육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직면한 문제, 즉 과도한 입시경쟁과 집단주의적인 교육방식이 과연 한국과 무관한 것인가.

한국에서의 대학 입시 경쟁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학생들은 정규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보충하고 있으며, 이는 역으로 정규 교육을 부실화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학원에서 미리 수강한 과목에 대한 교사의 강의는 지루한 것이 되고, 수업의 흥미도를 감퇴시킨다.

평준화된 고등학교의 한 반에서 일부만 수업에 적응하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고등학교의 교육 내용은 현대 사회를 살아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성인을 육성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살아온 3년의 기간중 학생들은 건강한 비판능력과 상상력을 상실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립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도 대학입시에 합격한 젊은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도 있다.

합격증이 없는 젊은이들은 경쟁에서 탈락한 실패자일 뿐이며, 사회는 탈락한 경쟁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결코 주지 않는다.

고졸학력은 취업.승진.재취업에 있어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실패한' 젊은이들중 일부는 보다 높은 꿈과 희망을 갖기 보다 순간적인 향락과 즐거움이라는 탈선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승리한 경쟁자' 들은 어떠한가.

대학 입시 준비에 지쳐 탈진한 상태에서 많은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술과 이성교제.유흥 등으로 낭비하고 있다.

대학은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 (場) 으로 변하고 있지 않나 우려할 수준이다. 대학교육은 보편 교육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학은 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보편적 소양과 비판의식을 갖춘 정상적 성인이 전문교육을 받아 전문화된 영역에서 활동하고자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학습을 익혀나가기보다 피동적인 학습태도로 귀중한 대학 4년을 소비한다.

수많은 대학의 난립과 취업준비가 안 된 대학졸업생의 증가는 각 직장에서 임금 인상 압력을 증대시키고 재교육 비용을 지출케해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비용을 떠나 더 큰 손실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나갈 젊은이들의 정신적.신체적 피해며, 이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전망을 매우 어둡게 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구태 (舊態) 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라보는 교육 개혁이 추진돼야 한다.

교육의 전체적 목표와 틀에 대한 전면적 재고찰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상상력과 꿈을 키우는 것, 중.고등학교 시기에는 구체적 지식을 갖춘 평균적 사회인 양성, 대학은 전문성을 지닌 인재의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돼야 하며, 이러한 틀에 따르는 교과서 및 수업 내용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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