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총재 비자금설을 폭로한 이후 대선정국이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극한대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폭로하는 쪽이나 당한 쪽이나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앞뒤를 안 가리고 상대방 죽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동안 TV토론이다, 후보검증이다 하며 선거문화가 그래도 발전돼 가는 듯이 보이더니 결국은 이 모양으로 되돌아왔다.
발단은 병역시비에서부터다.
신한국당 후보 아들의 병역에 문제가 있다는 폭로가 있은 다음 야당은 이 문제를 가지고 상대방을 끝장내겠다는 심산으로 물고 늘어졌다.
잘못이 있다면 문제 삼고, 해명을 들은 뒤 적절한 수준에서 국민의 판단에 맡기는게 정도 (正道) 인데 병역문제가 선거전략의 전부인 양 행동했다.
이를 받아 비자금 폭로에 나선 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비리가 있다면 증거자료를 뒷받침해 공개한 뒤 해명을 듣고 사법당국에 맡길 일이지 1탄.2탄식의 시리즈로 폭로작전을 벌이고 있다.
선거를 완전히 폭로물 시리즈로 끌고 나가겠다는 식이다.
국민들은 확인도 안되는 이 당, 저 당의 폭로에 휘둘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늘고, 여야 사이는 철천지 원수가 되니 이런 식의 선거를 치러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렇게 해서 선거에서 이긴들 패배한 쪽에서 그 승리에 승복하겠는가.
결국 남는 것은 선거후유증이요, 불신과 반목이다.
선거가 국민을 통합하지는 못하고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서야 선거망국론이 안 나올 수 없다.
최근 선거를 치른 영국과 프랑스의 선거 주제는 21세기를 열 새 리더십의 확보였다.
후보들은 새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갖고 미래를 기다린다.
지금 우리 선거는 어떤가.
몇 십년전 구태 (舊態)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아 정상적인 선거운동으로 복귀해야 한다.
폭로가 아닌 검증을, 비방 대신에 비전을, 죽이기 대신에 공존을 염두에 두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