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송지나 SBS 드라마 '달팽이'로 새롭게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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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송지나가 돌아왔다.

말없는 보디가드, 이정재도 함께다.

지난 95년 방송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모래시계' 이후 작가 송지나의 첫 드라마 '달팽이' 가 8일밤 9시45분부터 SBS전파를 탄다.

이번에 송지나와 짝을 이룬 것은 '옥이 이모' 를 연출했던 성준기PD.이정재는 여주인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터프가이 '백재희' 대신 11살 지능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해맑은 꽃배달 청년 '오동철' 로 변신한다.

선굵은 정치.사회적 격랑이 아니라 도시 소시민들의 내면을 흐르는 실개울, 그 중에서도 사랑얘기를 그려내기 위한 배역이다.

지난 3일 시사회에서 선보인 첫회분 화면은 필터씌운 카메라와 인공조명 덕분에 노란색이 주조인, 마치 동화같은 분위기. 그러나 이 동화에는 재벌2세도, 한창 잘나가는 출세지향의 젊은이도, 매혹적인 로맨스에 빠진 결혼적령기 선남선녀도 등장하지 않는다.

주무대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읜 지 오래인 동철과 누나 동희의 꽃가게. 주인공들은 이 가게의 꽃배달 손님들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짜릿한 자극을 기대하는 가정주부 윤주, 신분상승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법하지만 실은 그다지 영악하지 못한 미혼여성 선자, 선자를 만나 다시 청춘의 꿈을 찾았다고 믿는 윤주남편 병도. 각각의 배역은 2년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온 이미숙, 영화데뷔작 '접속' 으로 대종상을 받은 전도연, '머나먼 쏭바강' 이후 두번째 SBS나들이인 이경영이 맡았다.

윤주에게서 어머니 닮은 모습을 보고 그야말로 '바보같은' 사랑을 하는 동철까지 네 명의 주인공들은 각각 4부씩 번갈아 주연을 맡아 총 16부작의 '달팽이' 를 옴니버스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제작진이 시도하는 것은 멜로드라마식의 강한 흡입력보다는 마치 논픽션 다큐멘터리에서 빌려온 듯한 거리두기 연출. 지극히 '보통사람' 인 주인공들의 내면을 과장없이 넘나들기에 적합한 방식이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달팽이처럼 느리고 완만하다.

그 흐름 속에서 11살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간 이정재의 연기에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시청자라면, '달팽이' 는 재미있는 드라마다.

성준기PD는 느리지만 꾸준한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시청률에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 는 말로 대신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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