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피맛골 옛날엔 … 딱 한잔만~ 600년 서민 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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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서민들은 양반들을 실어 나르던 교자와 가마를 보면 무조건 엎드려 예를 표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던 일이 지체되거나 하급 관료들이 출근 시간을 놓치는 등 폐단이 많았다. 특히 종로통이 그랬다. 이 같은 불편을 덜기 위해 서민들이 양반을 만나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대로를 따라 좁은 길을 만들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흥인문까지 종로를 따라 양쪽으로 생긴 좁은 골목이 바로 피맛길이다.

당시 길의 폭은 3.43m(11척)였다. 이는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공전편’의 도로 정비 규정에 따른 것이다. 태종 15년(1415년) 도로를 정비하면서 대로는 폭 17.48m(56척), 중로는 5m(16척), 소로는 3.42m(11척)로 정했다. 피맛길은 그런 작은 길로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

피맛길에 서민이 많이 다니다 보니 목로주점·모주집·장국밥집 등이 자연스럽게 들어섰고, 이게 20세기 말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다 이젠 도심 재개발을 맞아 약 600년 만에 사라지게 된 것.

현재 남은 피맛길은 종로를 기준으로 북쪽으론 교보빌딩 뒤에서 제일은행 본점 사이, 서울YMCA에서 인사동 입구 사이, 탑골공원에서 단성사 사이 등이다. 남쪽에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중 북쪽 피맛길은 2002년 종로구의 새 주소 부여 사업 시행에 따라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단성사까지를 동피맛길, 서울YMCA까지를 서피맛길, 그리고 제일은행 본점에서 교보빌딩까지를 피맛길로 나눠 부르고 있다. 흔히 피맛골이라 부르는 구간은 교보빌딩에서 인사동 입구 사이다.

박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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