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이회창후보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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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체제가 닻을 올렸다.

집권당 대통령후보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지지도 3위권을 헤매는 李후보가 퇴세 (退勢) 만회를 위해 대구에까지 내려가 전당대회를 열고 총재직을 이양받아 새로운 기치를 내건 것이다.

그의 신체제는 보수개혁을 바탕으로 한 국민대통합과 국가대혁신, 그리고 개혁과 법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슬로건만으로, 李후보가 총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하루아침에 그의 인기가 치솟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합' 이니 '대혁신' 이니 하는 말도 정치권에서 한두번 나온 슬로건이 아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것을 추진하며,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일이다.

李후보는 '민족정예세력' 으로 신주체를 형성하겠다고 했다.

그가 내세운 정예세력이라는 것은 어떤 세력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신한국당 지도부 구성으로 보면 그것은 과거 군부정치의 잔재였던 민정계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들이 과연 정예세력인지, 특혜세력인지 얼른 가늠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개혁의 지속을 주장한다.

그러나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실명제를 완화시키고, 全.盧사면 요청이 어떤 유 (類) 의 개혁인지 이해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수사 (修辭) 로서의 개혁과 말만의 신주체가 있을뿐 실제로는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구세력연합이 있을 뿐이라는 따가운 지적도 있을 법하다.

집권당의 국정에 대한 영향력, 방대한 조직력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수차례의 여론조사에서 보아왔듯이 신한국당의 지지도는 10%대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조직도 기름칠이 제대로 안 되거나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면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도 있는 집단이다.

李후보가 국민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진 후 민심과는 전혀 따로 노는 당내 세력규합이나 정치권의 합종연횡 (合縱連衡)에 매달렸던 것은 커다란 방향착오였다.

경선 직후 그에게 부어졌던 50%지지는 신한국당에 대한 지지도, YS정부에 대한 기대도 아니었다.

李후보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지지였을 뿐이다.

李후보도 이제는 그의 '대쪽' 이미지를 회복하는 전략으로 나간다고 한다.

여러차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권에 집착하던 그가 뒤늦게 국민 마음잡기로 되돌아선 것은 그밖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몇가지 전제가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선 병역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는 아들의 병역문제를 '법대로' 라고 우긴다.

그러나 모든 절차가 법대로는 처리됐더라도 다른 의도는 없었을까. 대한민국 청년치고 군대 안 가는 방법이 없을까,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유혹이 오면 한번쯤 고려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군대에 가고 싶었는데 체중이 모자라 못 갔다면 믿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고서는 소록도도 한갖 정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李후보가 할 수 있는 그다음 일은 '한보의 몸통' 을 밝히겠다고 약속하고, '대선자금 의혹' 을 낱낱이 추궁하겠다고 약속하고, 주변 부패세력을 모두 배제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법대로' 에 대한 기대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부패구조를 척결할 것이라는 믿음에 다름아니다.

그런 고백과 약속을 바탕으로 국민속에 들어가 '정치판의 전면혁신' 을 내걸어야 그의 본래 이미지가 되살아날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세금 깎아주기.개발공약과 같은 달콤한 선심이나 남북문제 같은데서 깜짝쇼를 벌이는 책략이나 술수만으로 국민 인기를 끌어모으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 전당대회가 끝났으니 그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신한국당의 체제를 흔드는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신한국당에서의 연쇄적인 이탈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며 국정감사를 통해 병역문제에 대한 재공세가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신한국당의 거대한 조직은 부담일 뿐이다.

李후보는 모든 허위의식을 훌훌 벗고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설령 패배할지라도 '대쪽 이회창' 으로 남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즉생 (死卽生) 의 마지막 승부수가 될 것이다.

뉴미디어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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