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어린이 돕는 일 힘 모아 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 정운영 위원(右)이 지난 14일 평양에서 권근술 이사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은 설사 진료실과 치과 진료실로 나누어져 있다.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어린이들이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치과실 의자에 앉아 북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윤석봉씨 제공]

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의 지원으로 북녘에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이 문을 열었다. 남쪽 어린이 11명이 준공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어린이병원 개원도, 어린이 방북도 분단 60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관계사에 새 장을 열었다. 본지 정운영 논설위원이 평양 준공식 현장에서 '어깨동무' 권근술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정 위원=병원 준공에 대한 감상이 어떻습니까.

▶권 이사장=영화 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벤허' 시사회에서 "신이여, 이 영화가 정말 제가 만든 겁니까"라고 했답니다. '어깨동무'같은 작은 민간 단체가 지은 병원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조언과 지원으로 설치한 최신 의료 장비나 '공동 육아와 공동체교육연구소'가 꾸며준 놀이방 시설도 참 훌륭했습니다.

▶정 위원=어린이들의 북한 방문은 분단 사상 처음이라지요?

▶권 이사장=리틀엔젤스 공연 같은 것을 빼고, 순수하게 북쪽 어린이들을 만나 보러 간 것은 처음이지요. 남북어린이어깨동무가 지난 8년 가까이 북측과 쌓아온 신뢰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남북 아이들이 손잡고 노래도 하고, 탁구도 치고, 그림엽서.어깨동무 배지.즉석사진 같은 선물을 나누며 소곤대는 것을 보면서 마침내 우리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정 위원=그것을 새로운 남북한 시대의 한 단면으로 봐도 좋습니까.

▶권 이사장=북측의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을 만났더니 '6.15시대'들어 중요한 변화가 진행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8.15 기념일에 북쪽 어린이를 초청하겠다고 제의해 놓았는데 저쪽 반응이 궁금하네요. 통일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통일 연습을 할 때가 되었지요.

▶정 위원=그 통일 연습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지요?

▶권 이사장=어깨동무를 하려면 키도 비슷하고 마음도 통해야 합니다. 일곱살 먹은 남북 어린이의 키 차이가 12cm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야 작을 수도, 클 수도 있지만 인구 집단 간의 신장 차이는 사회심리적 억압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어요. 여기에 행동 발달이나 지능 수준 문제까지 생각하면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북녘 어린이를 돕는 일은 머지않아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우리 어린이를, 우리 어린이의 미래를 돕는 일입니다.

▶정 위원=특별히 어린이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물어도 좋습니까?

▶권 이사장=미 하버드대 정문 건너편에 케임브리지 코먼 광장이 있고, 그 한쪽에 조각상이 있습니다. 앙상하게 여윈 젊은 부부가 각기 축 늘어진 어린 아들과 딸을 팔에 안고, 서로 손을 잡으려고 애쓰는 처절한 모습입니다. 조각 받침대 뒷면에는 '대기근 1845~1849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이라고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한 민족이 다시는 풍요의 세상에서 굶주리는 일이 없기를!(Never again should a people starve in the world of plenty!)"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정 위원="굶어 죽는 일이 없기를" 하면 너무 산문적이 되나요?

▶권 이사장=19세기 유럽 최악의 아일랜드 감자 기근을 일깨우고, 당시 자신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영국에 대한 분노를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지요? 휴전선 너머 동족의 배고픔에 무관심하면서도, 수천억원대의 음식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우리가 정말 한민족이냐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정 위원=어린이 운동에 뛰어든 어떤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권 이사장=북한의 기근이 절정에 달했던 몇해 전 2000여명의 어린이와 함께 파주 통일전망대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북녘 친구들을 생각하는 행사가 끝날 무렵 풍선을 날렸는데, 마침 바람이 북쪽으로 불어 색색의 풍선들이 북녘 하늘로 날아오르자 아이들은 일제히 외쳤습니다. "얘들아 힘내라, 우리가 있다." "살아만 있어 다오, 우리 만날 때까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어린이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분단국 지식인으로서 저 어린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나.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정 위원=어깨동무의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권 이사장=연내로 평양의 학용품 공장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금형과 원자재를 보내 볼펜과 샤프 연필 각 200만 자루를 생산키로 했습니다. 머잖아 북한의 모든 어린이가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로고가 새겨진 필기구로 공부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5~6세 고아들이 있는 원산 '애육원'에 콩우유 생산 장비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의과대학이나 지역의사회 같은 민간 단체와 힘을 합쳐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평양 외의 다른 도시와 시골에도 세우려고 합니다. 저희 사업에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십시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