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개성공단 상징성보다 국민 안전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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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이 어제 시작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를 문제삼아 남북 군당국 간에 남은 유일한 통신 수단인 군 통신선을 차단하는 일방적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공단을 오가는 남측 인력의 출입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어제 개성공단에 가려던 700여 명의 민간인이 북한군 측으로부터 명단을 통보받지 못해 발이 묶였고, 같은 날 남쪽으로 나오기로 돼 있던 80여 명의 정상적 입경(入境)도 차질을 빚었다. 자칫하면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우리 측 근로자 500여 명이 오도가도 못하는 ‘볼모’ 신세가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북한이 대남(對南) 위협 수위를 높여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키 리졸브’ 훈련 기간 중 북한 영공과 그 주변을 지나는 남한 민항기의 안전운항을 담보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어제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전군에 ‘전투준비 태세 명령’ 하달을 예고했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양국이 누누이 강조한 대로 ‘키 리졸브’는 공격용 훈련이 아니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을 상정한 방어적 성격의 합동 대응 훈련일 뿐이다. 올해 처음 실시되는 것도 아니다. 한·미 군당국은 북한군에 참관 초청까지 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를 북침 전쟁 연습이라고 우기며 입체적 대남 협박에 나서고 있는 것은 남남갈등과 체제결속을 동시에 노린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은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가 어제 서울에서 북한의 군 통신선 차단 조치에 유감을 표명한 것도 북한의 이런 의도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본다.

군 통신선 차단 조치는 유사시 남북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통로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남북 간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해 전쟁으로 비화할 위험성도 이론상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 남북 간에는 가뜩이나 긴장 요인이 산적해 있다. 전면적 대남 대결태세를 선언한 북한은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서해상에서 언제든지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전면전 비화를 원치 않는다면 북한은 당장 군 통신선을 복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사태에 대해서는 북한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당장 직격탄을 맞은 것은 개성공단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단 내 남측 당국자 추방, 상주인력 감축, 육상통행의 엄격한 제한 등으로 압박을 가하더니 급기야 인력과 물자의 수송을 마비시키는 극단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훈련기간 중’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개성공단 내 남측 상주인력의 안전 문제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93개 남측 기업이 3만9000명의 북한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지난해 생산액은 2억5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36% 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징성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고 본다. 국민의 안전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개성공단 전면 중단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한 위중한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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