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일본영화 개방 찬성…감정적 배척 지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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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일합작영화 '사랑의 묵시록' 의 한국 상영이 불허되자 일본영화 개방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시장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개방논리에 대해 상호간의 국민감정이 풀리지 않는한 개방은 안된다는 시기상조론이 맞서 있다.

양측의 논리를 소개한다.

우리는 9년전에 할리우드 영화의 직접 배급에 반대할 때의 논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군사적.경제적 동맹국이라는 '진실 (?)' 로 인한 적대감이 없었을뿐 일본 영화 수입을 반대하는 논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 제작 편수는 반 정도로 줄었지만 외국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이 없기는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직배 (直配)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한국 영화가 상품과 예술로서 발전했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이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 이제 영상상품은 특정 영화와의 경쟁보다 인접 매체나 환경 등과 더 긴밀한 함수관계에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일본 영화 수입을 반대하는 논리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식민지 점령에 대한 일본측의 불명확한 태도와 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주장, 어로분쟁 등 한.일 현안이 먼저 명쾌하게 해결돼야 한다는 역사적 논리가 그 첫번째다.

두번째로는 경제적 논리다.

현재 국내 영상시장에서 겨우 20%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영화 시장 점유율이 일본 영화의 수입으로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는, 시장이 개방되면 일본의 저급한 대중문화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문화적 논리를 들 수 있다.

사실 국제관계는 법의 논리보다 대포의 논리에 가깝다.

집단간의 대립 속에서는 결국 힘의 논리가 관철된다.

그 힘이란 공격과 방어 간의 마찰력에 의해 결정된다.

일본 영화를 방어하는 우리의 논리 중 가장 큰 무기는 역사적 논리다.

반면 경제적.문화적 반대 논리는 할리우드 영화를 상기한다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적 측면의 반대 논리를 일본 영화 수입과 공식적이며 노골적으로 정면 대립시켜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사죄' 를 받아내야 한다.

그것이 선결돼야 한다.

그리고 일본 영화 전부가 저급한 오락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1950년대부터 구로사와 아키라를 위시한 대가들의 작품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영화가 몰락한 것처럼 흔히 얘기하지만 올해 칸 영화제 수상작인 '뱀장어' 를 비롯, 신진 감독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은 제2의 부흥기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물론 메이저 영화사 등의 장르영화와 저급한 오락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수세적 반대는 21세기적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방어의 논리 중에 암암리에 스며있는 일본 콤플렉스 또는 대일 (對日) 우월주의에 대한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러한 집단 심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일본 영화는 공개돼야 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우리에게 '공식적인' 강한 자극이 될 것인 반면 명작보다 대중 오락물이 주류 수입품이 되는 부정적인 현상도 예상된다.

하지만 완강하게 수입을 반대해 얻는 일시적인 경제적.심리적 이익보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욱 장기적인 정신적 이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어차피 한.일 양국은 서로의 시장을 '아주' 필요로 한다.

한국 영화계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게임을 시작할 때가 됐다.

다만 '진정한 사죄' 를 받아내면서, 동시에 이를 고리로 스크린쿼터 불간섭 등 '유리한 협상' 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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