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합의문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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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일 여야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다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간 건 ‘표결’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여야 정책위의장 협상에선 최대 쟁점이던 방송법·신문법 등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만들어 4개월간 논의한 뒤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는 문구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표결 처리’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고 여기에 민주당은 반발했다. ‘표결’이라는 단어가 합의문에 들어가면 처리 시한을 못 박는 느낌을 준다는 게 찬성과 반대의 공통된 이유였다. 결국 합의문엔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됐다.

어렵게 달성한 합의지만 곳곳엔 여전히 ‘지뢰밭’이 남아 있다. 민주당이 요구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은 합의문 작성 과정에서도 논란이 계속됐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 기구에 대해 ‘자문기구’라는 자구를 집어넣자고 고집했다. 야당이 사회적 논의기구의 합의안 도출을 상임위 의결의 전제 조건으로 삼을 가능성에 대비한 포석이다. 민주당은 “불필요한 사족”(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이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한나라당 의사가 관철됐다.

논란은 논의기구에 참여할 인사의 선정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크다. 자격과 선출 방식은 아직 미정이다. 그동안 양당을 압박해 온 좌우 시민단체 논객 등이 모두 참가할 경우 자칫 성과 없는 소모전이 재연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일전을 벼르고 있다. 문방위 소속 장세환 의원은 “이 기구를 통한 합의안 도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안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낸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법안 내용이다. 아직 여야는 내용을 놓고 머리를 맞대 본 적이 없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을 20%까지 허용키로 한 원안 대신 0%로 낮추는 수정안을 내겠다는 카드를 내비쳤지만 이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협상용’이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제안”이란 반발이 나온다.

황근(신문방송학) 선문대 교수도 “방송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참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며 “한 예로 지상파와 케이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의 겸영을 통해 지역방송을 살리려면 대자본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당이 대기업의 지상파 참여 부분을 포기할 수 있다고 한 건 직권상정 부담을 덜어준다는 특별한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추후 논의는 당연히 방송법 개정안 원안을 놓고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대안을 마련하더라도 신문·방송 겸영 금지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주공·토공 통합법 4월 첫주 처리=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 통합법의 처리 시점을 ‘4월 첫 주’라고 못 박은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는 “(통합 논의로 인해) 두 기관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 대상 법안 목록에 올렸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과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사회개혁법안 관련 언급은 합의문에서 빠졌다. 시한을 두지 않고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1월 합의를 존중키로 의견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임장혁·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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