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선재미술관 '중국 현대미술 단면전' 관람객 사로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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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중국 특유의 스케일 큰 대륙기질이 현대미술의 흐름과 절묘하게 맞닿아 깊은 여운을 준다고 표현하면 너무 성급한 단정일까?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현대미술의 단면전' 은 기대를 넘어서는 웅장함으로 먼저 관람객들의 넋을 빼앗는다.

또 세계 화단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현란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과연 중국!' 이라는 감탄사를 터뜨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오는 10월10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중국 상해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술평론가 페이 다웨이가 선재미술관과 함께 기획한 전시. 급격한 경제.사회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독특한 개성으로 표출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미술 작가 10명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50, 60년대에 태어나 문화혁명을 겪은 세대로 중국 아방가드르 미술의 선두주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배경에서 알수 있듯이 '전통' 과 '현대' 라는 경계선상에서의 묘한 조화는 출품작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쉬빙의 '천상의 책' 에서부터 이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국 한자가 꼼꼼하게 인쇄되어 있는 책 3백여권이 펼쳐진 채 바닥에 깔려 있고 천장에도 역시 한자가 찍힌 긴 종이가 느슨하게 걸려 있다.

이는 작가가 3년에 걸쳐 직접 새긴 4천여개의 활자로 찍은 것으로 그 섬세함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글자들이 모두 일부러 잘못 쓴 글자들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가 중국 문화의 대표격인 한자를 해체함으로써 중국전통과 서구문화의 사이에서 어떻게 중국문화를 다시 세울 것인가하는 의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쉬빙 작품을 둘러싼 온통 까맣게 칠해진 벽면을 지나면 마치 마이클 잭슨의 뮤직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비디오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온다.

구원다의 '국제연합 1993 - 2000' 의 일부로 비디오는 남녀노소.인종이 끊임없이 바뀌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사람의 진짜 머리카락을 카펫처럼 깔아 놓았다.

인간의 특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머리카락을 섞어 혼돈된 사회 속에서 인류의 화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꽃놀이용 화약을 사용하는 작가로 유명한 차이 구오치앙이 자신의 작업을 비디오로 보여주는 옆에는 개방이후 대량유입된 서구사상에 접하면서 겪는 혼란상을 개념적인 작업으로 보여주는 황용핑의 '성당을 다시 건축해야만 합니까?' 가 있다.

그외 경제발전에 따라 무너지기 시작한 가족관계를 가족사진등으로 보여주는 펭멩보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경주 =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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