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성문 꽁꽁 잠그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1국>
○·황이중 7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제7보(78~98)=판이 조용하다. 땡볕이 내리쬐는 열대의 한낮처럼 판 위에선 아무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황이중 7단이 78로 지킨다. 숨막히게 두터운 수.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수. 전쟁은 더 이상 없다는 선언과 같다. 이세돌 9단은 79로 대마를 안정시키며 멍하니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난전이 되면 영화 적벽대전에 나오는 조자룡처럼 붕붕 나는 이세돌이지만 이런 따분한 평화 속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사실 79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그러나 이런 수를 두며 아무 감흥이 없다는 것은 또 얼마나 불길한 일인가. 이세돌 9단은 문득 3번기의 첫 판을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88까지 좌변을 잡아 백의 우세는 점차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89로 잇자 90의 달리기. 황이중은 난공불락의 요새 속으로 들어가 성문을 꽁꽁 걸어잠근 채 수비에만 전념하고 있다. 98은 좋은 수고 선수다. 그러나 앞서의 90이나 98로는 한 번쯤 ‘참고도’ 백1로 붙여야 했다. 백1은 고수들에겐 한눈에 보이는 수이고 위험성도 거의 없다. 흑이 A로 물러서면 그 자체로 큰 이득이고, 흑2로 반발하면 바둑을 여기서 끝내버릴 수 있다. 말하자면 ‘참고도’ 백1은 흑을 자포자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한 수였다. 그러나 황이중은 단 1%의 위험도 싫다는 듯 아예 성문을 열고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