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삼국지]8.박찬호의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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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찬호 내셔널리그 다승 1위.방어율 2위!'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스의 공백을 틈타 메이저리그 첫 승리의 기쁨을 맛본 박찬호는 곧바로 상승세를 타며 96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박은 첫승의 감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96년 4월12일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2승째를 거뒀다.

선발 5이닝동안 1안타 무실점의 놀라운 투구였다.

박은 이날 승리로 초반 잠깐이지만 내셔널리그 다승 1위.방어율 2위 (0.82)에 오르기도 했다.

박이 미국에서 승전보를 보내오는 동안 임선동은 법정 싸움을 계속했다.

임은 5월16일 LG와의 지명권확인 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임은 곧바로 판결문을 다이에 호크스측에 보내 다이에가 일본프로야구기구 (JBO)에 선수등록 절차를 밟게 했다.

그러나 JBO와 한국야구위원회 (KBO) 는 95년 한.일슈퍼게임을 통해 "양측은 한.일프로야구 협정을 준수한다" 는데 합의한바 있어 임은 법에서 이기고도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의 요시쿠니 커미셔너는 협정대로 임의 선수등록을 받아주지 않았다.

임은 자포자기했다.

임은 "우선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겠다" 며 올림픽이 열리는 애틀랜타로 떠났다.

그러나 그동안의 공백은 임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임은 호주전에 등판했으나 3과3분의1이닝만에 8안타를 얻어맞고 6실점했다.

'거물' 의 아마추어 마지막 등판치고는 처참하리만큼 씁쓸한 성적이었다.

한편 일본의 조성민은 2군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고 있었다.

1군에서 불러주지도 않았고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부진한 임과 소식없는 조가 그렇게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는 동안 박은 당당한 메이저리거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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