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의 무대는 아름다워] 공연계 꿈꾸는 젊은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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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공연예술 '꿈나무'들의 진로 상담이 잦아졌다. 사무실로 전화를 하고 찾아오거나 e-메일로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주로 물어오는 요체는 하나다. "공연계에서 일을 할 작정인데 어떻게 준비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왕도'가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이들이 선망하는 공연계의 일이란 기획.홍보.운영 등 포괄적으로 말하면 '예술경영'에 해당한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이 분야를 가르치는 대학원 과정이 '호황'이다. 비온 뒤 죽순 돋아나듯 학과 설립이 붐이다. 예술경영 전문저널 '문화다움'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32개 대학원에 33개 전공이 개설돼 있다. 미달학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걸 보면, 어느 학교든 지원자 걱정은 없는 것 같다.

현장의 수요를 감안할 때 이런 전문가 양성이 곧 '공급 과잉'으로 드러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도 전문 인력이 태부족하던 과거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발전을 이끄는 으뜸 '성장엔진'은 유능한 인력이다.

한국 영화의 무서운 성장 동력도 바로 인력이었다. 1990년대 영화 자체의 매력에 이끌려 밀물처럼 밀고 들어온, 저임금 고급 인력의 희생 위에 오늘의 '금자탑'이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력의 이동 경로를 볼 때 요즘 공연계가 영화계의 전철을 밟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전문 인력 수급 현황을 기초로 공연계에 눈을 돌리는 꿈나무들에게 들려줄 조언 몇 가지가 있다.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첫째 조언. "환상을 버려라." 기대에 들뜬 학생들 앞에서 매번 내뱉는 대학원 강의 첫 마디이기도 한데, 이 말이 끝나면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진다.

실제로 공연계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동반하는 고된 일터다. 포스터 들고 벽보에 풀칠하러 다니던 시절은 지났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예술가인 양 우아하게 '폼생폼사'하다가는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기 딱 좋은 곳이다. 속성상 밤 근무를 다반사로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환상을 버렸다면 다음과 같은 공부와 다짐이 뒤따라야 한다. ▶예술에 대한 폭넓은 교양을 쌓아라 ▶예술가들의 고충을 내 것으로 여겨라 ▶글쓰기 실력을 키워라 ▶외국어를 연마하라 ▶셈에 밝아라 ▶신뢰를 아주 중히 여겨라.

마지막으로 가슴에 콕콕 새겨야 할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부단한 성찰이다. 예술을 다루면서 이게 없으면 '죽은 영혼'이나 다름없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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