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 7000만원 유통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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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모조지폐 7000만원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제과점 여주인 납치범 정모(32)씨가 경찰이 제공한 ‘수사용 모조지폐’를 갖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모조지폐는 육안으로 판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다고 알려졌다. 유통될 경우 시장 교란과 함께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본지 2월 16일자 10면>

◆어떻게 식별하나= “1만원권 모조지폐는 색감과 질감에서 진짜 돈과 거의 차이가 없고, (모조지폐가) 가로 길이가 1㎜ 정도 길다”고 경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수사용 모조지폐는 같은 일련번호 ‘EC1195348A’를 사용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에 이와 같은 일련번호의 지폐가 유통되면 즉각 수거하고 사용자를 추적하라고 지시해 놨다”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는 면으로 봤을 때, 왼쪽 여백의 숨은 그림(은화)이 없다. 또 우측에 세로로 찍힌 점 세 개 안에 숨겨진 점자도 없다. 홀로그램도 밝은 은색이 아니라 회색이다.


경찰의 모조지폐 활용 문건에 따르면 ‘2005년 8월 구권 1만원짜리 위폐 12억원을 처음 만들었고, 2007년 8월 신권 위폐를 새로 찍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 대한 경찰과 한국은행(한은)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한은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지폐를 시장에서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면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고 한은에서 답신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승윤 한은 발권정책팀장은 “경찰이 위폐를 만드는 데 자문한 적이 없다.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주장했다. 제작 방법에 대해서도 경찰과 한은 모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문건에 따르면 100만원짜리 ‘작은묶음’ 띠지를 한은 측으로부터 제공받았다고 했지만, 이 팀장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황한 한은과 경찰=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것과 관련, 경찰청 관계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사후에 어떻게 할지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 측은 “일단 경위 파악부터 해야 하며, 위폐 사용에 대해선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그러면서 “한은에선 위조지폐를 신고하면 액수를 불문하고 6800원 상당의 현용주화세트만을 제공한다. 이는 보상이 아니라 홍보·격려 차원”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한은이 허둥지둥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치밀한 매뉴얼을 갖춰놨다. 위조지폐 감식 전문가인 박억선 외환은행 금융기관영업부 차장은 “미국은 공익적 목적에 의해 모조지폐가 활용됐고, 이에 대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면 액면가로 1대1 보상을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박 차장은 “연방준비은행(FRB)과 조폐 당국이 경찰과 협조해 모조지폐를 만든다. 2007년에는 마약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800만 달러를 찍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한국과 다른 점이다.

시장 교란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에서는 몇 가지 특수 기법을 사용한다. 특별 제작된 잉크를 활용해 일정 기한이 지나면 지폐가 흰색으로 퇴색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센서를 부착해 자동 연소되는 방식도 사용한다.

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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