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영화>'거짓말쟁이 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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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무기력한 보통사람이 일상의 권태에 질려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 또는 그들의 좌절된 꿈을 해학과 어두운 정서로 깊이 있게 연출하고 있는 존 슐레진저 감독. 시골에서 한몫 잡기 위해 도시를 찾은 청년의 몰락을 그린 '미드나잇 카우보이' 와 '마라톤 맨' 같은 사회물로 할리우드에서 유명해지기전인 영국 시절 제작한 이 작품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전혀 없이 공상에 빠져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배우출신인 그는 뛰어난 연기지도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빌리역의 톰 커트니는 익살스러우면서도 해학적인 연기를 펼친다.

줄리 크리스티는 '닥터 지바고' 에서 라라역을 맡았었다.

빌리는 반복적인 무미건조한 생활속에서 자신이 영웅이 되는 공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장의사 직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주위에서 따돌림을 받는 빌리에게 유일한 낙은 바로 공상뿐이다.

어느날 상상과 현실을 혼동해 시작한 작은 거짓말이 또다른 거짓말을 낳으며 빌리의 삶은 점차 거짓말로 뒤죽박죽이 된다.

두 여자에게 결혼을 약속하는가 하면 작은 액수의 돈을 횡령해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이 한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마음 졸이며 거짓말의 포로가 된 불쌍한 빌리. 거짓으로 일관된 이런 생활과 주위의 수모를 피해 런던으로 가서 유명한 코미디언의 대본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꿈을 꾸지만 단지 꿈으로 끝난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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