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서울대생'=일반인 될 줄 알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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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4월20일)도 지났는데 뭐하러요. 그리고 내일은 오후에 시험 두 개를 봐야 해서 밤 새야 될 거 같은데요."

김원영(23.서울대 사회학과 3학년)씨는 만나기 까다로운 보통 대학생이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1급 장애인이다. '서울대에 다니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과거에 언론의 취재요청을 받은 경험이 몇 차례나 된다.

입학하던 2003년엔 '다행히' 언론의 집중조명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법학과 입학생 중 50대 지체장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군데 취재를 온 측에서는 굳이 오르막길을 휠체어로 가보라며 사진을 찍었고, 요로결석 때문에 며칠간 고생했었다는 고교 시절 기숙사 사감의 한 마디 말은 '역경을 딛고 일어난 장애인 일화'로 포장했단다.

언론의 이런 시각이 못마땅했던 그는 최근 서울대 인터넷신문 스누나우(www.snunow.com)측의 취재요청에 차라리 직접 3회에 걸쳐 수기를 쓰기로 했다. '일반인되기 프로젝트의 실패''수퍼장애인의 딜레마'같은 부제를 붙인 이 글에서 그는 대학생활의 고민을 담담하고도 재치있는 문체로 묘사한다.

예컨대 합격을 통보받은 뒤 그는 '일반인'처럼 살 결심으로 대전에서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상경했지만, 신입생 환영회부터가 난관이었다고 돌이킨다. 지하나 2층의 술집에서 열리는 모임에 생면부지의 과친구들의 손에 들려 이동하는 '들림의 미학'이 싫어 남몰래 도망치며 참담함을 맛봤는가 하면, 휠체어가 닿을 수 없는 이웃 단과대의 수업은 들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특히 입학초기 쏟아진 외부의 관심을 두고 그는 "'장애인+서울대생=일반인'이 될 줄 알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장애인+서울대생=잘난 장애인'이 된 것"이라고 썼다.

"어린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장애인이라는 낙인을 극복하고 평범해지기 위해선 특출한 뭔가로 상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선청성 골형성부전증이다. 취학연령이 되자 그의 부모는 학교에 찾아가 "아이가 잘 걷지 못하니 좀더 신경써서 보살펴달라" 부탁했다.

이게 입학 거절로 이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고. 이후 내내 집에 있다가 검정고시로 남들보다 2년 늦게 중학교(삼육재활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집밖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게 좋아 비장애인들과 섞여 고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냈다. 공부를 잘 해야 일반 고교에서 받아줄 거라 생각했다.

바라던대로 같은 재단의 일반고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겨울에는 학교앞 언덕을 올라가다 빙판에 수차례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도 "그 때까지 별다른 좌절 없이 살아왔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등교해서 늘 한 자리에 앉아있었던 고교시절과 달리 광활한 캠퍼스를 무대로한 대학생활은 또다른 도전이었다.

"서울대 다니는 장애학생을 일반화할 순 없지만, '수퍼 장애인'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나 학교에 굳이 아쉬운 소리 안 하고 그 안에서 조용하게 생활하면 적당히 섞여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장애인의 날에 상받는 사람들, 언론에 주목받는 장애인들처럼 마치 장애가 없는 것처럼, 장애를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대단한 분들도 있죠.

그러나 그들도 장애인이고 저 역시 제 자신의 장애를 직시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신도 고교 때까지도 '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하는 식의 완곡어법을 선호했다. 장애인권운동에 참여하라는 선배들의 권유도 처음에는 크게 내키지 않았다. 결국은 장애인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가 부딪힌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결국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외면할 수 없게 했다. 한편으로는 동기 장애학생이 휴학을 하는 등 다른 장애학생들의 어려움도 여전했다.

물론 입학초기보다 교내환경은 나아졌다. 학교측에서 파악하는 장애인 수는 대학원생 포함 50여명. 시각 장애인도 네 명이다. 장애학생 이동지원을 위한 차량이 한 대 다니고 있으며, 공익근무요원이 이동도우미로 일한다.

청각장애학생들을 위해 봉사장학생이 노트북 컴퓨터로 강의를 그대로 타이핑해 보여주는 문자통역 서비스도 있다. 장애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도 '봉사'에서 '사회적 소수의 인권문제'로 달라져가고 있다.

김씨는 현재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장애인의 날 집회 때 저도 마포대교 위에 있었어요. 거기 모인 분들은 대부분 세상에 알려진 '엘리트 장애인'이 아니었어요. 20,30년쯤 집안에만 있다가 야학을 접하면서 처음 외출한 분들도 있더군요."

그는 "'우리가 장애인을 위해 뭔가 하자'는 식으로 장애인을 대상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세상에 더 자주 눈에 띄어 보는 사람이나 보이는 사람이나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아가 수동적이고, 착하고, 공동체에 미담을 제공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목소리 높여 적극적으로 권리를 요구하는 '나쁜 장애인'도 많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램이다. (사진은 본인의 요청으로 싣지 않습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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