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우리 아픈 마음 안아준 넌, 고양이 아닌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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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듀이
비키 마이런·브렛 워터 지음, 배유정 옮김
갤리온, 336쪽, 1만1000원

 이야기는 대평원 혹은 미국의 심장부라 불리는 아이오와주의 농촌 마을 스펜서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경제 불황과 대규모 농업화의 물결은 이곳에 실직과 금융 위기의 구름을 드리운다. 대평원의 냉기가 맹위를 떨친 88년 1월18일 아침, 이 마을에 드리운 구름을 걷어낼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스펜서 공공도서관장이던 저자가 도서 반납함에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다. 이 고양이가 19년간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로 사랑 받으며, 전 세계에 감동을 전한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ey Readmore Books)’다. 2006년 안락사할 때까지 듀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다.

오렌지색 솜털과 커다란 황금빛 눈을 가진 고양이 듀이는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마을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외로운 노인은 그와 마음을 나누고, 실직자는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저자는 “경제가 나쁠 때 겪는 가장 큰 피해가 마음의 상처”라며 “듀이 때문에 경제가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듀이는 잠시나마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잊게 해줬다”고 강조한다.

듀이의 엄마를 자처한 저자도 그에게서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알코올 중독이던 남편과 이혼한 뒤 싱글맘으로 살며 자궁·난소 적출 수술과 유방암 수술, 가족의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듀이가 있어 버텨낼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힘든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을 바닥에서 일으켜 꼭 껴안아주며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것”이라며 “기억나지 않는 더 많은 나날 동안 듀이가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고 말한다.

역자의 말대로 이 책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질긴 생명력과 내면의 강인함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체온이 있는 생명체 사이의 교감이 만들어 내는 큰 울림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때문에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모든 사람들을 잘 대우하라. 좋은 삶을 살아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듀이의 가르침이 더 와 닿는다.

책에는 고무줄에 집착하는 듀이 때문에 벌어진 ‘고무줄 숨기기 대작전’과 심각한 변비를 앓는 듀이를 위해 ‘응가 차트’를 만들고, 듀이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느라 전전긍긍하는 도서관 직원의 모습도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쇼핑백을 뒤집어 쓰고 어쩔 줄 모르다가도 따뜻한 복사기 뒤에 숨어들어 낮잠을 청하는 나른한 고양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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