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댄스 대학생 동아리 '대즐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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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때는 장마비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 곳은 3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연습실.등장인물은 시원하게 어깨를 드러낸 흰색 롱드레스 차림의 여자들. 남자들도 턱시도까지는 아닐망정 흰 셔츠에 검은 바지, 검은 조끼로 말쑥하게 차려 입었다.

음악이 흘러 나온다.느리고 우아한 3박자로 편곡된 팝송.둘씩 둘씩 맞잡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왈츠가 시작된다.요한 슈트라우스가 활약하던 19세기 유럽 궁정이 아니라 몇 걸음만 나서면 즉석 떡볶이집이며 대입학원 간판이 즐비한 20세기말 서울 한복판에서.이게 웬 공주병·왕자병 환자들이야? 아님 혹시 카바….

그건 아닌 것 같다.음악이 가수 임상아의 ‘뮤지컬’로 바뀌자,옷도 간편한 티셔츠.치마도 깡충 올라가 짧다.마치 미국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인공들처럼 경쾌하고,파격적인 춤을 추기 시작한다.둘씩 짝을 이뤄 추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것은 ‘자이브’다. <관계기사 43면>

“제일 좋아하는 춤이요? 아무래도 자이브죠.요즘 노래 중에도 이렇게 자이브에 딱 맞는 게 있거든요.록카페에서 이런 거 흘러나오면,그야말로 무대를 휩쓰는 거죠.”

음악이 끝나고,무대의상을 벗어버리자 이네들의 정체가 확실해진다.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반바지에 샌들차림의 젊은이들.흔히 볼룸(ballroom)댄스라고 부르는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대학생 동아리 ‘대즐스’의 회원들이다.대즐스는 “‘스’포츠댄스를 ‘즐’기는 ‘대’학생들”의 첫글자만 따다 뒤집은 이름.지난 91년 ‘대학 스포츠댄스 클럽’(USDC)이란 이름으로 처음 출발,지금은 대학 신입생에서 대학원생까지 회원이 2백명이나 된다.

혹 이런 열기가 ‘염불보다 잿밥’아닐까 묻자 대즐스 회원 오주현(외국어대 불어과 2학년)씨가 한마디로 답한다. “해보지도 않고,구경도 안해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요.”회장 정진오(경기대 사회체육학과 3학년)씨는 “그런 선입견 때문에 오히려 초창기 선배들은 동아리내에서 커플이 생기면 제명을 할 정도로 엄격했다”고 소개한다.

지금도 각종 행사에 시범공연 초청이 잦지만 상업성이 지나친 경우, 예를 들어 록카페 개업날 춤을 춰달라는 요청은 거절할 만큼 대외적인 이미지에 신경을 쓴다.회원들은 “파트너가 있는 춤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예의를 춤과 함께 배운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회원 심규호(서울대 식품공학과 2학년)씨는 “‘막춤’과 달리 정형화된 동작에 예술성을 담는 춤”이라면서 “꾸준히 배워나가는 즐거움”을 매력으로 꼽는다.패트릭 스웨이지와 제니퍼 그레이가 현란한 맘보를 추는 ‘더티댄싱’(원제 Dirth Dancing·미국·1987년작)과 붉은 천을 흔드는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파소 도블’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댄싱히어로’(원제 Strictly Ballroom·호주·1992년작)는 회원들의 필수 감상 비디오.

춤 한가지의 기본기를 배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두 달 남짓.열 가지 기본 춤을 익히려면 최소 1년 반은 걸린다.남다른 소질이 없어도 그렇게 익혀나가면 꾸준히 근육이 발달한다.아니 발전이다.근육발전? 그렇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까지 고루 활용하는 훌륭한 전신 스포츠이자, 2천년 시드니 올림픽 시범종목 채택이 추진되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가 ‘스포츠댄스’란다.

글=이후남·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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