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부패 부추기는 '미성년 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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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포항에서 맥주집(일반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며칠전 오전1시 잠자리에서 한 경찰관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구 사장님,밤늦게 미안합니데이.내일 휴가를 가는데 아침 일찍 떠날거라,마 할 수 없이 지금 전화했십니더.”

A씨는 돈을 챙겨 그 경찰관을 만나러 나가야 했다.손님의 대부분이 대학생이라는

현실이 그를 옭아 매고 있기 때문이다.대학 1,2학년생은 대개 만20세가 안되지만 술집을 출입하는게 엄연한 현실이다.하지만 미성년자보호법은 만20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술을 못마시게 하고 있다.그래서 이들을 출입시킨 업주를 처벌하고 있다.그러니 A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담당경찰관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A씨는 “법이 업주들의 목을 죄는'범죄수단'이 되고 있다”며 흥분했다.

이달부터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된다는 사실에 귀가 번쩍 띄어 본사에 전화를 걸어온 A씨는“청소년보호법에는 18세 미만에게 술을 팔면 안된다고 돼있다는데,그러면 이제 18,19세 대학생 손님을 받아도 단속에 안걸린다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청소년보호법이 보호대상을 18세미만으로 낮춘 게 사실이지만 경찰들의 단속근거인 미성년자보호법은 그대로 살아있다.이같은 혼선은 술집 여종업원에게도 있다.풍속영업규제법은 18세 이상이면 유흥업소 종사자로 일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위생관련 공무원들이 단속 근거로 삼는 것은 식품위생법 시행규칙.'20세 미만을 접대부로 고용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8세면 술을 마시는 현실을 인정하는 청소년보호법.풍속영업규제법,이를 무시하고 20세를 고집하는 미성년자보호법과 식품위생법.법과 현실이 틀리고,법끼리도 서로 틀리니 혼란이 없을 수 없다.지난달 공무원의 부패를 막기 위해 법을 고쳐야 한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내무부.보건복지부는'연령을 낮추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문화체육부장관도 국회에서“청소년보호법이 통과되면 중복되는 다른 법률을 정비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고,한 구석에서 부패공무원들의 돈벌이 도구가 되고 있다.이런 현상이 방치되는건 정말 이해가 안간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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