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비종…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어딘가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낭만주의적 포장을 지우고 사실주의적 관점으로 화폭에 담아냈던 바르비종 파! 프랑스 근대 미술의 한 획이 되었던 바르비종의 이름은 바로 이 작은 시골 마을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 중반, 당시 창궐했던 콜레라를 피해 루소와 밀레가 이 곳을 찾아왔고 투박하지만 소박한 이 자연에 매료된 그들이 그것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 후 많은 화가들이 이 곳으로 몰려들어 바르비종 파가 탄생했다.
아직도 마을 곳곳에는 바르비종 파의 스튜디오와 아틀리에가 그대로 남아 때로는 비극적이었던, 때로는 장렬했던 화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같은 골목, 동화 같은 갤러리에서 우린 반나절을 소진했다. 골목 끝 작은 부동산에 내걸린 매물들의 가격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정도로 안착하고 싶던 곳이었지만 우리에겐 갈 길이 있었다. 밀레가 그린 만종과 이삭줍기의 배경이 되었던 넓은 들판과 섬섬이 자리잡은 마을 몇 개를 더 지나면 고풍스러운 샤또를 클럽하우스로 만든 Cely GC를 만날 수 있다.
Cely GC는 예정했던 골프장이 휴장을 하는 바람에 바르비종에서 가장 가까운 골프장을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하여 복불복으로 찾아간 골프장이었지만 의외로 왕건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염려가 앞섰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걸까? 이대로 진입 해도 괜찮을까? 어디선가 백작 어르신의 하인들이 몰려와 앞을 막아서는 것은 아닐까? 다소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가진 골프장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골프장은 이렇지 않을까?’ 상상 속에 그려봤던 모습에 근접한 외관이었다.
성을 매입하여 호텔로 개조하고 주변 부지를 골프장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 1990년. 원래는 클럽하우스 시설도 모두 성 내부에 있었는데 성이 내부공사 중이라 현재는 레스토랑과 함께 별채에 피신 중이라고 했다. 고성의 내부를 구경하고 싶은 욕심에 공사가 끝나면 다시 한 번 들르겠다고 했더니 워낙 오래된 성이라 공사는 네버엔딩이란다. 게다가 여러가지 문제로 현재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라는데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쯤은 제자리를 찾았을까? 프로샵 옆에 붙어 있는 레스토랑은 여름이라 야외 테라스를 넓게 사용하고 있었다. 눈 앞에는 코스 전경이 펼쳐지고 뒤로는 고성이 든든하게 받쳐주는 그림 같은 프레임이 연출되는 테라스였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그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될 정도.
테라스에 대한 미련을 접고 1번 홀로 직행했다. 지구본을 연상시키는 구형의 티마크가 인상적이었다. 역대 프랑스 왕들의 사냥터로 사용되던 퐁텐블로 숲이 인접한 탓일까 골프장의 울창한 조경림도 미관에 일조를 하고 있었다. 잭 니클라우스 설계팀이 디자인한 코스는 한국에서도 몇 번 경험한 바가 있어 제법 익숙했다. 파72, 전장 길이 5,874m, 전반적으로는 파크랜드 형이라지만 니클라우스 설계답게 Up-Down이 많고 벙커가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어스름할 무렵의 18홀 티잉 그라운드, 첨탑이 걸린 지평선 위에 노을이 내리고 이를 배경으로 드라이버를 짚고 서있는 골퍼의 실루엣에선 밀레의 '만종'이, 허리를 구부리고 티 위에 공을 올리고 있는 골퍼의 모습에선 '이삭줍기'가 자연스레 연출되며 골퍼는 그대로 명작 속의 주인공이 된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