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북 정책, 클린턴·부시 절충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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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일(미국시간) 정식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적어도 2∼3개월이 지나야 확정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 각 부처의 부장관·차관·차관보 등 정책 담당자들에 대한 인선과 인준청문회로 두어 달이 지나가는 정치 일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국무부 요직 내정자들의 면면과 최근 발언으로 대북 정책의 큰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다.

국무부의 한반도 라인은 1990년대의 클린턴 행정부 때로 회귀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으로 내정됨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장관 자문관 또는 대북 특사로 대북 정책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이는 웬디 셔먼은 클린턴 행정부 때 대북정책조정관이었다. 동아시아 전반을 관장하는 동아태담당 차관보에 내정된 커트 캠벨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 차관보였고, 한국 정부 인사들과도 빈번히 접촉했던 인물이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클린턴 행정부의 연장선상에 있다. 2002년 클린턴의 임기 말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미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갔다. 힐러리 내정자 역시 13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방북 의사를 묻는 질문에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어느 누구와도 만날 의향이 있다” 고 답했다.

하지만 힐러리의 청문회 발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설령 북·미 직접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북한의 기대와 달리 결코 녹록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힐러리 내정자는 “북·미 관계 정상화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13일 나온 북한 외무성의 담화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란 말까지 했다. 이는 오바마의 ‘단호하고 직접적인’ 대북 외교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임과 동시에 상원 국방위에서 민주당 내 강경파로 분류됐던 자신의 성향을 담은 발언이었다. 오바마 정부가 부시행정부 초기 못지않게 강경하고 원칙적인 대북 자세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북·미 관계를 연구해 온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클린턴과 부시의 절충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이를 어떤 비율과 순서로 배합할 것이냐다. 오바마의 테이블에는 부시와 클린턴이 검토했거나 실행에 옮긴 선택지들이 모두 올라와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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