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인 시비세운 누카자와 經團連 전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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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보/내 사랑의/깊이를/시험하시려/일부러/눈을/감으셨나요(번역)'. 일본 북부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六ヵ所村)의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의미있는 시비(詩碑)가 세워졌다.죽은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그린 와카(和歌:5.7조로 된 장.단가의 총칭) 한 편을 새겨놓은 이 시비는 일본인 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오모리현의 주민.국회의원.자치단체장등이 모여 1일 제막식을 가진 이 시비는 한국 유일의 와카 여류시인 孫戶姸(73)씨의 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본지 5월7일자 참조〉 이 시비가 세워지기까지 한.일 문화교류를 열망하는 한 일본 재계인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화제의 주인공은 일본 재계'총본산'인 게이단렌(經團連)의 누카자와 가즈오(糠澤和夫.61.사진)전무. 미.일무역협의회 간부,록펠러재단 객원연구원등을 거친 게이단렌의'국제통'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다.누카자와 전무는 지난해 우연히 일.한경제협회 월보에 소개된 일본관광진흥회 서울사무소 기타데 아키라(北出明)소장의 孫씨에 관한 글을 읽고 감명받아 사재(私財)를 털어 시비를 세웠다.젊었을 때 쇼와(昭和)여자대학에 유학한 孫씨는 신라향가에 뿌리가 있는 일본 와카를 접하고 외롭게 시작(詩作)활동을 계속해왔는데 일본내에서도 수준작이란 호평을 듣고 있다.

롯카쇼무라가 건립지로 정해진 것은 누카자와가 게이단렌 전무로 취임하기 직전 이곳의 토지개발회사인 ㈜무쓰오가와라개발 사장을 역임했던 인연때문.孫씨의 시비 밑에는 한.일 문화교류를 염원하는'타임캡슐'이 묻혔다.1백년후 개봉될 타임캡슐 속에는 孫씨가 지금까지 지은 주옥같은 와카 70여수와 시비건립에 관계된 사진.자료등이 들어 있다. [도쿄=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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