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미국 시대는 갔다 ‘제2세계’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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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제2세계
파라그 카나 지음, 이무열 옮김
에코의서재, 664쪽, 2만8000원

세계질서의 앞날을 언급할 때 사람들은 최소한 10년간은 이 책을 언급할 것이다. 아직 고전은 아니다. 단 이 주제를 다룰 때 핵심도서가 될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 이후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이 줄곧 언급돼 왔던가? 지금 생각하니 두 권은 조금 낡았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지구촌의 장밋빛 앞날(후쿠야마)과 음울한 분열(헌팅턴)을 각기 예측했지만, 그 책들은 미국을 가운데 놓고 주변 그림을 그렸다는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 책은 그 점이 다른데, 이 분야의 또 다른 고전과도 구분된다. 이를테면 『지하드 대 맥월드』(벤자민 바버), 『제국의 패러독스』(조셉 나이)등은 9·11 이후 미국은 과연 제국인가 아닌가, 수퍼파워 미국의 일방주의는 약인가 독인가를 반복해 물었다.


즉 지금까지 책들은 세상이 ‘1(미국)+난쟁이’의 단극(單極)질서라고 믿어왔고,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 유지가 미래의 관건이라고 생각해왔다. 반면 이 책은 “미국의 지분은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감히 주장한다. 세상은 빅3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미국의 영향력은 그만큼 축소된다는 얘기다. 저자 파라그 카나(사진)의 대담한 분석에 따르면 미국·유럽연합(EU)·중국, 이 셋이 벌써 작동하고 있는 빅3 수퍼파워의 실체다.

이쯤에서 해외 서평대로 “확신에 찬 전망과 권고”가 돋보이는 이 책의 저자 이력을 훑어보자. 인도 태생의 그는 오바마 선거캠프의 대외정책팀을 맡았던 국제전문가. 지난 해 IT전문지 ‘와이어드’가 뽑은 ‘2008 가장 명석한 인물’로 뽑혔고 뉴욕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한다. 책을 읽다보면 그가 세상을 엄청 넓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월척급의 저술은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가늠케 해준다.

기존 책 중 이 책과 가장 많이 닮은 것이 프랑스 학자 에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 토드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몰락한 제국이고, 제국 비슷했던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반짝 40년이 거의 전부였다. 동유럽 몰락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진 것은 아이러니이지만, 그건 실은 너무도 분명한 사안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쌍둥이 적자(무역수지·경상수지 적자) 때문이다. 지난 한 해만도 무려 2조 달러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 우리는 ‘빚쟁이 나라’ 미국의 제조업 몰락→금융산업 이상 비대→거품 대붕괴를 지켜보지 않았던가. 어쨌든 미국·EU·중국의 빅3는 얽히고 설켜 있는 구조라서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가 위험해지는 “샴 쌍둥이”(30쪽)다. 미국 무역의 40%는 동아시아와의 사이에 한 것이고, 중국도 유럽·미국의 투자에 의존한다. 공생하는 빅3는 그러면서도 전에 없는 종류의 경쟁을 할 것이다.

오해 마시라. 책은 미국 이야기만은 아니다. 제목 그대로 제2세계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빅3 경쟁의 핵심 무대는 제2세계라는 거대한 링이다. 제2세계란 본디 사회주의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저자는 부자나라 국가(주로 OECD 회원국)와 제3세계 사이에 낀 중간 국가 그룹을 총칭하는 말로 바꿔 쓴다(역시 대담하지 않은가!). 그에 따르면 브라질·말레이시아·우즈베키스탄·러시아 등이야말로 향후 지구촌을 무대로 한 체스판의 운명을 좌우할 티핑 포인트(극적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 역할을 할 것이다.

사실 책 분량의 70% 정도가 제2세계 유람기다. 저자가 50개국을 직접 둘러보았고, 여기에서 받은 느낌을 섬세한 뉘앙스를 섞어 유연한 문장으로 압축해 놓았는데 그게 보석이다. 마치 고급 여행가이드북과도 같아서 시야를 넓혀주는 효과가 크다. 거대담론은 그렇다 치고 한국은 어찌될까? 저자는 어떻게 우리 앞날을 내다볼까?

한국은 당당한 제1세계 국가로 분류됐다. 일본·호주·싱가포르와 함께 지역강국이다(488쪽). 소득수준, 수출액, 사회시스템 모두가 그렇다. 문제는 이웃 중국이 빅3의 하나이고, 일본 역시 막강하다는 지정학적 ‘낀 위치’다. 때문에 종합하자면 ‘1.5세계’가 아닌가 싶은데, 어찌됐던 우리로서는 생존게임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을 벤치마킹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저자가 유럽중심주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어 좀 걸리긴 하지만, 그건 후쿠야마·헌팅턴도 마찬가지였다. 번역 문장도 일급 수준, 당연히 강추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파라그 카나=인도에서 태어나 아랍에미리트와 미국·독일에서 자랐다. 오바마 선거 캠프의 대외정책팀을 맡았으며, 현재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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