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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부품 소재 대기업이 주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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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000원어치 물건을 수출하면 국내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의 2005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617원이다. 나머지 383원은 수입 원자재와 부품 소재 몫이라 해외로 유출된다. 자급자족 경제가 아니라면 해외로 돈이 나가는 건 당연하다. 한국과 같은 대외의존형 경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갈수록 유출되는 돈이 많아지는 건 문제다. 국내에 떨어지는 돈도 줄어들지만 부품 소재를 수입해 가공 조립하는 경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국내에 남는 돈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1995년에는 1000원 중 698원이 남았지만 2000년 634원, 2005년 617원으로 줄었다.

 대일 무역적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적자는 사상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넘었다(320억 달러). 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은 한번도 흑자를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적자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건 우려된다. 적자가 100억 달러대에서 2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데는 10년이 걸렸지만 3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데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수출을 늘리려면 일본 부품 소재의 수입도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에 떨어지는 돈은 갈수록 줄고, 대일 무역적자는 갈수록 늘어나는 건 국내 부품 소재 산업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부품 소재와 관련해 일본의 협력을 요청한 건 잘했다. 일본 부품 소재 기업들이 한국에 많이 진출하도록 하겠다는 합의가 이뤄진 것도 다행이다. 일본 기업들이 5억 달러 투자 의향을 밝히는 등 구체화되고 있는 점도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무역역조 시정에 훨씬 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40여 년간 단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음은 물론 갈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에서 양국 간 우호 증진이란 공염불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조의 시정은 부품 소재 산업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에서 시작돼야 한다. 한국에 투자할 때 가급적 합작 방식을 택하고 기술 이전도 적극적으로 해주길 바란다. 일본 정부도 그렇게 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부메랑 효과 운운하며 몸을 사릴 일 아니라고 본다.

 정부도 부품 소재 산업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부품 소재는 중소기업이 하는 것이라며 중소기업 지원책의 일환으로 생각해 온 기존의 인식 틀을 벗어 던지는 게 시급하다. 지금껏 부품 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정부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지원했는데도 여전히 이 꼴인 건 이 때문이 크다.

부품 소재 산업은 대기업도 많다. 이번에 GM 납품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LG화학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도 부품 소재이고, 삼성전기와 현대모비스도 부품 소재 분야 대기업이다. 외국의 유명 부품 소재 기업도 상당수가 대기업이다. 초일류 부품 소재를 만들 가능성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TFT-LCD도 처음에는 천덕꾸러기였다. 개발비가 막대한 데다 판로가 없어 적자가 아주 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난관을 이겨낸 건 삼성전자가 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능성 작은 중소기업만 지원하는 등 대기업을 사실상 역차별해 왔다.

앞으로는 대기업이 선도 기업이 돼 국내 중소기업과 일본의 부품 소재 기업을 연결시키는 방식의 삼각제휴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술 있는 중소기업을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이들을 묶어 대형화해 또 다른 선도 기업으로 육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대기업 시스템으로 가지 않겠다는 기술형 중소기업은 산·학·연으로 묶어 지원하는 혁신형 클러스터 체제를 고려해볼 만하다. 지금과 같은 ‘무늬만 클러스터’ ‘규모의 경제 없는 중구난방식 테크노파크’로는 안 된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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