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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초비상 실물경제 … 대담한 선제 대응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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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인천 남동공단에 가보면 기가 막힌다. 공장 매물 전단지가 거리를 도배하고 기계가 멈춰선 곳이 허다하다. 한쪽에 기약없이 쌓인 재고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물론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태반이 금융회사나 보증기관의 자금 회수를 막기 위한 눈가림식 조업이라고 한다. 수도권 최고의 중소기업 공단이 이런 상황인데 지방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구 성서공단의 경우 전체 공장의 20% 가까이가 매물로 나와 있다. 주변 식당들도 상당수가 폐업했다. 지난해 원자재 파동에 이어 경기침체의 한파에 주요 공단들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국회에 해머가 날뛰고 철부지 의원들이 해외 골프를 즐기는 사이, 우리 경제는 이미 저 밑동부터 무너져 버린 것이다. 수출·생산·투자라는 실물경제 지표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금융지표인 환율·금리·주가가 다소 호전되는 착시현상에 넘어가선 안 된다. 실물경제가 무서운 속도로 붕괴하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의 수출은 각각 18.3%, 17.4% 감소했다. 11월 산업생산 지표도 14%나 줄어 40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이런 수출과 내수의 동반 침체는 외환위기 때도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다. 10년 전엔 내수는 위축됐지만 수출은 환율효과에 힘입어 활기를 띠었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요즘 ‘공포의 1월’에 떨고 있다. 최악의 실물경제 지표가 잇따라 예고되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4분기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크게 줄어 상당히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말했다. ‘상당히 큰’이라는 형용사를 쓸 만큼 충격적인 마이너스 성장이 확인된 것이다. 이 총재는 “올해도 성장이나 수출, 고용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하며 ‘매우’라는 부사를 썼다. 실제로 지난해 말보다 올 상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 무역협회는 올 1월 수출이 30%가량 격감하고 상반기 전체로도 두 자릿수의 감소를 전망했다. 수출이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게 됐다. 어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입에 올렸다.

수도권보다 지방,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어렵다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은 간판 대기업까지 앞날을 장담하기 힘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적자의 늪에 빠졌고, 포스코는 창립 40년 만에 부진한 실적 전망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반 토막 나고 LG디스플레이 역시 적자를 예고하고 있다. 주력 수출제품인 자동차·반도체·휴대전화·액정화면이 모두 죽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이번 경제위기에 취약할 것이라는 주요 경제예측기관들의 불길한 예언이 맞아떨어질 조짐이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지면 자체 성장동력을 잃고 언제 폭삭 주저앉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이너스 성장만큼 절박한 경제위기는 없다.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1980년과 98년 딱 두 번밖에 없었다.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비상사태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동원해야 하는 비상 시기다. 세계 각국도 막대한 재정적자를 각오하고 비상 대응을 하고 있다. 지금은 추경예산은 물론 그 이상도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필요하면 정치적 쇼까지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 지하벙커의 ‘워룸’에 대한 비아냥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진짜로 워룸에서 전투복을 입고 근무해야 할 위기 상황이다.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속도전이 생명이다. 이미 통계로 위험이 확인된 뒤에야 정책 처방에 들어가면 너무 늦다. 실기하면 효과는 반감하고 사회적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예상보다 훨씬 무서운 속도로 실물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다시 중심을 잡고 지체없이 비상 대응에 나서야 한다. 맨 앞에서 위기에 맞서는 역할은 정부와 여당의 몫이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야당도 정치위기가 경제위기에 전염되지 않도록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위기의 뇌관이 째깍거리고 있다. 과감한 선제 대응만이 경제위기를 막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