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부랑자, 환경 지킴이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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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젠다21


환경과 일자리 창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용어다. 하지만 ‘녹색 도시’ 예테보리의 성공을 이끈 데에는 ‘녹색 일자리’라는 청사진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예테보리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베리푼 지구’가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1시간 반이니 매우 가까운 곳이다. 베리푼 지구에 거주하는 주민의 절반 이상은 소말리아나 보스니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들이다. 다른 나라의 이민 지구들이 그렇듯 이곳 역시 가난과 무질서의 늪에 빠져있던 곳이었다. 범죄율도 높았다. 예테보리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시당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 이 지역의 복지 증진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이곳을 방문했지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해결책은 환경연구가들로부터 나왔다. 바로 ‘녹색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이 정책에 따라 별 기술이 없는 이민자들과 거리의 부랑자들은 먼저 ‘환경 미화’에 투입됐다. 그동안 환경미화사업이라고 해봐야 쓰레기를 치우는 정도가 고작. 하지만 ‘녹색일자리 창출’ 사업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안 제시했다. 스웨덴 말을 모르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무료 언어강습을 펼친 것은 고용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정책적으로 생태경제학 연구를 함께 실시했다. 이 연구의 중요한 모델이 된 것은 ‘아젠다21’이었다.
‘아젠다 21’은 환경정책을 펼치는 나라들이 지침으로 삼고 있는 행동강령으로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처음 채택되었다. 스웨덴은 이것을 바탕으로 ‘지방 아젠다 21’을 만들어 빈민지역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부랑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하자 공터가 깨끗해졌다. 공터가 단순히 깨끗해지기만 한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은 이 공터에서 회의를 열어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켰다. 공공 정원 가꾸기, 맞벌이 가정을 위한 보육원 시설 확충, 재활용 센터 건립 등은 베리푼 지역의 ‘낮은 곳의 사람들’이 일궈낸 결과물이다. 시 당국은 자본을 대고, 지역 주민들은 기꺼이 자신의 몸과 머리, 그리고 마음을 보탬으로써 가능한 결과였다.

베리푼 지역의 동물농장

동물농장의 아이들


베리푼의 성공은 예테보리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스웨덴 전역의 빈민가가 이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큰 실적을 거두지 못한 곳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것이 스웨덴을 환경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주요한 몫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공하지 못한 지역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용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언어를 교육했던 예테보리의 정책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베리푼 지구는 이제 더 이상 낙후된 빈민지역이 아니다. 예테보리 중심가로 몰리는 관광객들은 다시 전차를 타고 베리푼으로 간다. 베리푼의 달라진 환경은 곧 베리푼 변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쓰레기더미 가득했던 공터는 대부분 녹지나 가족농장으로 바뀌었다. 한때 거리의 흉물이었던 무채색 건물들은 산뜻한 외투로 갈아입는 ‘비주얼 혁’신을 이뤄냈다. 베리푼 지구 주민들의 행복지수는 예테보리 중심부와 비슷해졌으며 범죄율 또한 눈에 띄게 줄었다.

거리의 미화원들은 더 이상 집게를 들거나 수레를 끌지 않는다. 시당국은 이들의 자긍심을 살려주기 위해 거리 곳곳에 쓰레기 분리 장비들을 갖추었다. 또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시내 곳곳에 340여 개의 재활용 분리장을 마련했다. 분리법은 색유리, 흰유리, 신문, 잡지, 금속, 플라스틱, 의류, 건전지, 음식물 쓰레기로 9종류로 나눠진다. 시민들은 이 지침에 따라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분리하고 비용을 내면 ‘녹색고용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예테보리 거리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힌 빈곤의 스트레스도 많이 사라졌다. 지역 주민들이 녹색활동가로 변신해 삶을 꾸릴 수 있는 대책, 도시가 행복해지면 도시의 시민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대책. ‘녹색 도시 ’예테보리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협조 / 이노우에 토시히코, 사계절 출판사 (번역 김지훈)
주요 참고문헌/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 (이노우에 토시히코ㆍ스다 아키히사 편저)
기타 참고문헌 /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박용남), 친환경 도시 만들기 (이정현), 도시 속의 환경 열두 달 (최병두), 친환경 도시개발정책론(이상광)
사진출처ㆍ예테보리 시청, swipnet.se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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