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인간과 컴퓨터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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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러시아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다 92년 세상을 떠난 공상과학(SF)작가이자 과학평론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생전에 1백권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그의 작품 가운데 연작형태의 6권짜리'로봇'시리즈가 있다.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들의 가공할만한 활약상을 담은 작품이다.과학자들은 이 소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논문까지 발표하는 등 이 로봇소설은 로봇공학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 소설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그가'로봇 3원칙'이란 것을 만들어 철저하게 이 원칙에 의거해 작품을 집필했다는 점이다.첫째로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危害)를 입혀서는 안되고,둘째는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며,셋째로 로봇은 앞의 두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로봇 3원칙'의 내용이었다.인조(人造)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도,적대관계일 수도 없다는 것이 로봇공학에 대한 그의 기본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은 80년대 이후의 많은 SF작가와 영화인들에 의해 여지없이 깨뜨려졌다.영화와 소설속에서 새로 창조된'젊은' 로봇들은 툭하면'주인'인 인간의 뜻을 거역하고,걸핏하면 해를 가한다.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로봇을 무찔러 없애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아이러니가 20세기 후반 SF작품들의 공통된 흐름이다.

컴퓨터공학의 흐름 역시 그런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컴퓨터의 등장 이후 인간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지만 그 의존도가 높아지다 보니 컴퓨터가 초월적이며 초인적인 어떤 힘까지 지니게 되기를 갈망한다.하지만 컴퓨터공학자들은'컴퓨터 만능'시대라도 컴퓨터가 인간의 내면세계에 접근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이나 체스대결도 컴퓨터 예찬론자의 입장에서는 천하의 고수(高手)를 이기게 함으로써 그 탁월성을 입증하자는데 뜻이 있을 것이다.바둑의 경우 일본에서는 유단자급 소프트웨어도 인간을 이기기가 어려운 것으로 판가름났거니와 IBM은 지난해에 3승2무1패를 거둔 체스 세계챔피언을 다시 등장시켜 6연전을 치를 계획이라고 한다.호사가들의 구미를 돋울 것이 분명하지만 컴퓨터가 이긴다 해서 환호작약할 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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