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상사보호.사죄 - 대형비리증인 자살 외국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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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보사건과 관련,검찰의 조사를 받고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박석태(朴錫台) 전제일은행 상무가 자살함으로써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朴씨의 자살은 자신의 증언으로 은행과 청와대관계자.정치인등 관계자들이 처벌받게 됐다는 점,청문회에 출석함으로써 자신과 은행의 명예가 손상됐다는 점 등으로 심한 자괴감을 느낀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대형 비리사건과 관련해 중요 증인이 자살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다.그러나 이웃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사례가 적지 않다.물론 외국의 경우와 朴씨의 자살동기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주요공직자들의 자살사건이 빈번한 일본에서는 자신이 모시는 상사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자살이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지난 89년 리크루트 사건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 검찰에 소환된 3일뒤 자살한 아오키 이헤이(靑木伊平).당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 비서를 지낸 그는 다케시타의 자금줄을 관리했다.그는 리크루트 사건과 관련된 주요 정치인의 비리에 대한 각종 정보를 가진 것으로 추정됐으나 자살함으로써 스스로 입을 막았다.

지난해 9월 스기하라 다다시(杉原正)경찰대학장이 오사카(大阪)경찰청장 재직때 부하직원이 저지를 비리사건에 대한 감독책임을 통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례도 있으며 12월에는 정부미 매입가격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던 기우치 요시로부 식량청 총무부장이 자민당과 의견충돌끝에 자살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부패사건과 연루된 고위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자살하는 일이 많은데 대체로 자신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짐으로써 입게 될 명예손상을 견디지 못하거나 죽음으로써 자신의 비리에 대해 사죄한다는 뜻이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프랑스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그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은행에서 1백만프랑(약 1억5천만원)을 불법대출받은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지난 93년5월 자택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자살이유는 자신의 불법대출로 인한 명예손상을 견디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95년 벨기에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자크 르페브르가 이탈리아제 헬기 수입을 둘러싼 스캔들과 관련,조사를 받던중 자살한 경우도 베레고부아 총리와 비슷한 사례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93년 국영에너지회사인 ENI의 정치자금 제공사건으로 상.하 양원의원의 15%에 달하는 1백51명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9명의 관련자들이 자살했다.특히 정치자금 제공자인 ENI사장 가브리엘레 칼리오리는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자살했다.칼리오리의 자살은 자신의 증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파리=배명복 특파원,도쿄=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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