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김홍빈씨, 열 손가락 잃는 역경 넘어 7대륙 최고봉 모두 밟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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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씨가 2008년 네팔 마칼루(8463m)를 등정할 당시의 모습. [원정대 제공]

산악인 김홍빈(44·에코로바 홍보이사)씨는 한때 전국체전에서 스키 크로스컨트리 금메달을 딸 정도로 체력이 뛰어났다. 에베레스트(8848m)·낭가파르바트(8125m)도 다녀오는 등 자신만만한 등반가였다.

하지만 28세 때 큰 시련이 찾아왔다. 1991년 북미 알래스카 매킨리(6194m)에 혼자 오르다 탈진해 잠이 들어 의식을 잃고 말았다. 16시간 만에 구조돼 목숨은 건졌지만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손등까지 망가져 손목 부위에 철심을 박아 뭉툭한 손만 남게 됐다.

절망에 빠졌다. 혼자서는 옷을 입거나 벗을 수조차 없었다. 손잡이를 돌리지 못해 문을 못 여는 바람에 방 안에서 용변을 보기도 했다.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좌절하진 않았다. 손가락들을 잃기 전 쌓은 실력을 되살려 95년 전국체전 알파인 대회전에서 폴 없이 비장애인들과 겨뤄 3위를 차지했다. 자신을 불구로 만든 산도 되찾았다. 97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 정상을 시작으로 2007년 7월 호주 코지어스코(2228m)까지 6개 대륙의 최고봉을 차례로 올랐다.

그리고 새해 2일 오전 1시50분(현지시간 2일 오후 3시50분)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897m) 정상에 올랐다. 7개 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11년이 걸렸다.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서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처음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도전정신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남극 최고점에 오를 겁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남극 원정에 떠나기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의 등정에는 정후식(48)씨가 동행했으며, 현지 가이드가 김씨의 등정 사실을 국내로 알려왔다. 원정대 고문인 윤장현(55) 한국YMCA연맹 이사장은 4일 “김씨가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인간 승리”라고 평가했다. 현재 현지 사정으로 위성통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11일 출국해 칠레 남쪽 끝 푼타 아레나스에서 군용기를 타고 남극 탐험 전진기지인 패트리엇 힐 빙하에 도착했다. 이어 28일 해발 2700m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빈슨 매시프 공략에 나섰다. 남극 서쪽 빙원인 엘즈워드 산맥의 중앙에 있는 빈슨 매시프는 평균 기온이 영하 49.6도이고, 폭풍설이 심한 곳이다.

김씨는 온전치 못한 손으로 암벽·빙벽을 타는 ‘맞춤’ 기술을 스스로 개발했다. 버스 안에서 빈 자리가 있어도 서서 가며 발로만 중심을 잡는 훈련을 했다. 넘어질 경우에 대비해 엉덩이나 어깨부터 땅에 닿게 해 다치지 않도록 ‘낙법’도 익혔다. 그는 손이 뭉툭해 스틱이나 아이스 액스(도끼) 같은 장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등산화 끈조차 혼자 매지 못한다. 그래서 “원정 때마다 ‘아름다운 동행’을 해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게 됐다”고 했다.

“매킨리 조난사고가 없었다면 7개 대륙 최고봉 완등이란 도전은 없었을 겁니다.” 출국 전 “8000m급 14좌 완등에도 나서겠다”며 그가 한 말이다.

광주=이해석·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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