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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컬처코드] ‘개콘’ 황현희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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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말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부문 남자 우수상을 받은 황현희(사진)의 수상 소감이 해를 넘기며 화제다.

“모 단체에서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2008년 ‘나쁜 방송’으로 선정했는데,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걸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런 선택은 안 했을 것이다. 나라가 어렵고 경제가 어려울 때 진정 국민에게 웃음을 드리는 시간의 의미를 잘 생각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 모 단체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한 진보 매체는 “황현희의 철없는 독설”이라는 비판 기사를 실었다. “한쪽에선 파업, 한쪽에선 잔치(연예대상)가 이뤄지는 이질적인 세밑 방송가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남을 풍자하는 개그맨은 자기 비판에 겸허해야 한다” “(영혼을 팔아서 웃겨드리겠다는 황씨의 말도) 이명박 정부 들어와 생긴 유행어라는 점에서 몹시 거슬린다”고 썼다. 민언련은 “‘개콘’ 중 여성 비하와 막말, 외모 비하, 가학성 등 일부를 문제삼았을 뿐”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개콘’은 지난해 빼어난 성취를 이룬 오락프로의 하나다. ‘리얼 버라이어티 대세론’ 속에 부진을 면치 못하다 화려하게 부활해 공개 코미디의 건재를 과시했다. ‘왕비호’ 윤형빈은 독설의 쾌감을 안겼고, ‘뿐이고’의 안상태는 대중의 절박감을 담아냈다. 황현희·박영진·박성광은 궤변과 억지, 말꼬리 잡기라는 말개그의 진수를 선사했다. 달인 김병만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문가주의, 허세부리기에 경종을 울렸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개콘’의 선전에 대해 “공개 코미디 특유의 무한 경쟁에 협업과 조율 시스템을 살려낸 것”을 이유로 꼽았다. 코너간 무한 경쟁 대신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집단적 창발성을 중시하고, ‘신구의 결합’으로 무조건 새로운 웃음만을 쫓은 타사와 차별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코미디·오락프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한 시선을 드러낸 점이다. 바로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 민언련의 지적처럼 못 생긴 여성학자가 나오고, 관객의 외모를 비하하며,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분명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그간 우리 코미디의 고질적 문제로 수차례 지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약점을 공격하는 데서 웃음을 발동시키는 코미디 장르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최우선적으로,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은 아니다.

영화평론가 맹수진씨는 한 글에서 “우리 독립영화에서 가장 깨져야 할 화석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며 “정치적인 올바름이 있으면 다소 못 만들어도 용인되고, 진정성 있다고 평가되는 것이 이제는 깨져야 한다”고 썼다. 그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이 만능이자 강박이 되는 순간, 문화와 상상력은 불모와 불능이 되니까 말이다.

덧붙여 ‘개콘’중 ‘황현희PD의 소비자 고발’은 취재원을 몰아붙히고 억지 주장을 펴는 TV시사고발 프로를 패러디한 코너다. 고압적인 PD(황현희)와 생떼쓰는 소비자단체 회원(안영미), 두 사람의 공방에 번번이 당하는 업자(유민상)가 나온다. 잘 알려진대로 KBS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에서 이름을 따왔다. 자사 간판 프로를 소재로 ‘미디어권력’을 풍자한 셈이니, 이 정도면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올바른 것이고.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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