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김일성에 개방 권고했던 루마니아 브루칸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루마니아의 실비우 브루칸(81)부쿠레슈티대교수는 루마니아의 공산체제를 몰락시킨 89년12월 시민혁명의 주역이자 북한전문가다.그는 91년'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체제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요지의 공개서한을 김일성(金日成)에게 직

접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부쿠레슈티에서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북한에는 루마니아와 달리 반체제세력이 없는 것같다.황장엽(黃長燁)노동당비서의 망명이 반체제세력 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黃비서 망명은 참으로 중요한 대사건이다.북한주민이 그의 망명을 어떻게 알고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때문에 북한주민에게 먼저 이를 정확히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한국은 이 점에서 진실을 북한주민에게 알릴 수 있는 전파장비등 여러수단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黃비서는 통일이 망명동기라고 밝혔다.옛 동유럽국가들의 반체제와는 다른 것같다.

“그의 망명 의미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평양체제에 저항하는 성격도 있고,평양체제를 구출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그 정도의 공산지도자가 면밀한 계산없이 망명하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내 견해로는 한국이 현단계에서 통일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루마니아 속담에'국이 끓어 넘칠 때까지 기다려라'는 말이 있다.북한이 국을 충분히 끓여 넘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북한은 경제파탄으로 주민들이 굶어죽는 실정이다.벌써 국이 끓어 넘치는 상황은 아닌가.

“식량위기는 북한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시작됐다는 신호다.체제는 위기가 깊어질수록 경직될 것이며 정치.사회.군부의 분쟁이 이제부터 터질 것이다.”

-그렇다면 붕괴과정의 시작이라는 말인가.

“평양체제는 현재로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주민들이 문제다.그들은 처음으로 배고픔과 추위에 직면했다.주민들은 기아(飢餓)에 항상 민감하다.이것은 바로 (붕괴)과정의 시작이다.그러나 결코 그 끝은 아니다.”

-한국에는 북의 체제유지를 돕는 쌀지원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인도적 견지에서 돕자는 운동도 있다.

“돕는 것이 좋겠지만 북한주민들이 지원받은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의 미래에 관해 자살전쟁 도발등 갖가지 시나리오가 무성한데.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군부가 중요한 변수인 것같다.루마니아의 경우 인민군이 차우셰스쿠에게 등돌린 것이 몰락을 앞당기지 않았는가.

“루마니아 군은 89년 12월22일 정오까지 수도 부쿠레슈티와 티미쇼아라 등지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했다.그후 태도를 돌변해 총을 차우셰스쿠쪽에 겨누었던 것이다.북한군도 루마니아처럼 변화에 저항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그러나 군이 위급한

시점까지만 저항한다는 선례를 루마니아군이 남겼다.아마 북한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브루칸교수 약력〉

▶1916년 부쿠레슈티 출생▶40~44년 반나치 저항운동 참여▶44~55년 공산당기관지 편집국장▶56~59년 주미대사▶62~65년 국영TV 사장▶66~86년 부쿠레슈티대 교수▶89~90년 구국전선 대변인▶90년~현재 부쿠레슈티대 명예교수▶주요저서'기로에 선 세계사회주의'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