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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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기달이 승용차를 운전하여 차를 훔친 슈퍼 앞까지 왔다.승용차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무심한 행인들과 슈퍼 손님들만이 오가고 있었다.승용차 주인은 파출소나 경찰서로 가서 차량 도난 신고를 하고 있거가 혹시 견인차가

끌고 갔나 하고 인근의 견인차량 보관소들을 둘러보고 있을 것이었다.

기달은 슈퍼 앞에 차를 정차시키고 차 키를 꽂아둔 채,이미 의경복장과 시체를 덮은 옷가지들을 가방에 집어넣은 대명,우풍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세 사람은 슈퍼에 물건을 사러 온 것처럼 슈퍼로 잠시 들어갔다가 나와 차를 버려두고는

길을 빙 둘러 비트로 돌아왔다.

비트에서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길세,그리고 용태,도철들이 손전등 불빛이 부옇게 밝혀진 어둠 속에서 일이 어떻게 되었나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확실하게 마무리된 거야,뭐야?”

용태가 이빨 사이로 침을 뱉으려다가 도로 삼키며 물었다.

“더 이상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가 없어.”

기달이 기지개를 켜며 자신있는 어투로 말했다.

“실수한 게 없나 다시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보라구.꼬투리가 잡힐 만한 단서들을 남겨놓지는 않았나 되짚어 보란 말이야.”

“글쎄,없는 것 같은데.지문이 차에 좀 묻어 있겠지만,우린 전과자도 아니고 지문 찍고 주민등록증 만드는 나이도 아니잖아.경찰에서 지문을 찾아보았자 말짱 황이라 이 말씀이지.”

우풍이 대답을 하면서 피곤한지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의경들이 우리 얼굴을 기억하지 않을까?”

도철이 염려스런 얼굴로 가는 금박테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신축공사장 컴컴한 지하실에서 일을 당했는데 그치들이 우리 얼굴을 볼 수나 있었겠어? 나도 그치들 앞에서 도망을 칠 때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야.그 점은 염려놓아도 돼.키가 얼마고 나이가 어떻

고 하는 그 정도 인상착의 가지고는 명동에서 미스 김 찾는 격이지.”

용태가 의경에게 정복을 빼앗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그 일은 용태가 직접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그러는지도 몰랐다.

“너희들,오늘은 아예 호스트바 안 갈 거야?”

기달이 우풍과 도철를 쳐다보며 또 한번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못 간다고 이미 연락을 했는걸.일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 알았으면 늦게라도 간다고 할걸.”

“지금 다시 연락하고 가봐.지금이 한창 재미 오를 때 아냐?

냄비에 바람든 년들 온갖 지랄들을 다 한다며?나도 그런 데 들어갈 수 없나? 몸매가 이래가지고는 좀 곤란하겠지?”

용태가 약간 뚱뚱한 자기 몸을 두 손으로 쓸어보며 히죽거렸다.검은 관 옆에 놓인 손전등 불빛이 가물가물 꺼지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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