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빛과그림자>1. 동남아 고속성장 끝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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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활력이 예전같지 않다.경제 개혁의 초입에 들어서있는 베트남.필리핀을 제외하고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등 동남아 성장의 주도세력들이 동시에 지난해 성장세 둔화로 어려움을 겪었다.이 지역 경제의 추진력인 수출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국제수지는 악화되고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졌다.“동아시아의 고속성장은 끝났다”는 폴 크루그먼 미 스탠퍼드대 교수의 2년전 경고가 현실로 다가온 것일까.아니면 경기순환상의 일시적 침체인가.동남아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는'강 건너 불'이 아니다.현장취재 시리즈를 통해 동남아 각국의 현황과 고민,그리고 해법등을 알아본다. [편집자註]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년간 20%를 넘나들던 수출신장세가 지난해

그 절반이하로 떨어졌다.수출주도의 대표주자이던 태국은 94~95년 평균

25%이던 수출증가율이 2%로 폭락했다.이 지역'모범생'싱가포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싱가포르 무역개발청의 레스커 CEO(차관급)는“지난해의

수출부진은 전자관련 제품의 경기순환적 요인 때문이지 국제경쟁력의

약화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말레이시아에서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늦어도 올 하반기에는

동남아 전체의 수출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전자제품의 세계수요가 하반기에 회복될 것이고

세계교역신장률도 6.7%로 회복될 것”이라는게 레스커의 분석이다.

어려움이 더 심각한 태국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차투몽콘 재무부

차관보는“최근의 경제후퇴는 저소득 국가를 중진국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이 너무 뒤늦게,또 소극적으로 이뤄졌던 결과”라고 자체 비판했다.

분석이야 어찌됐든 동남아 각국은 그동안 마련해 놓은 장기구상과 현

문제점에 대한 단기적 해결방안을 조화시키는 작업에 한창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 밖에 없다”는 싱가포르대 국가경제연구소의 리

차오 유엔부소장의 말대로,동남아가 지금 벌이고 있는 구조고도화 노력의

핵심은 인력개발.정보화등을 통한'질적 발전'이다.동남아는 여전히

안보다는 밖에서,또 보호.지

원보다는 경쟁에서 발전의 기반을 찾고 있다.늘어나는 국제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개방과 규제완화의 기본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해외자본과

기술의 도입을 꾀하고 있다.말레이시아 통산부의 아지즈

무역담당차관보는“국제수지 적자를 줄이려고

단기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부품.소재등 연관산업과 고도기술부문

발전에 외국기업이 기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한가지 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경제부진과 국제수지적자 확대 분위기 속에서 보호주의적 정서가

들끓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동남아의 이러한 자신감과 내일에 대한 준비는 밖에서 보는 동남아의

장래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전체적으로는 경제성장세가 올

상반기까지의 조정기를 거쳐 올 하반기부터 회복된다는,동남아 각국의

자체진단과도 비슷한 전망이 일반적이다.

그것도 달이 바뀌면서 상향조정되고 있다.

최근에는“동남아의 초고속성장은 끝났다.그러나 고속성장은 지속될 수

있다”(소젠-크로스비 증권)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유럽등은 여전히 아시아를 최우선 투자대상지역으로 꼽고 있고

그중에서 중국 다음으로 동남아에 가장 많은 투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는

보고서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고속성장 때문에 임금이 올라가고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한 구조적 제약,또

국제수지적자 증가라는 단기적 제약을 고려할 때 동남아를 보는 안팎의

눈은 의아할 정도로 곱다.이들이'크루그먼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바

탕은 무엇일까. [싱가포르=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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