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야당 ‘점거 정치’에 무기력한 한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의석은 곧 민심이다. 의석수가 많으면 민심을 더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그게 다수결의 원리이기도 하다. 또 정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뛰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는 그러나 다르다. 172석의 한나라당이 83석의 민주당은 물론 5석의 민주노동당 때문에 옴짝달싹 못할 때가 많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일 질서유지권 발동을 거론했다. 그는 이날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어제까지는 정치적 의사 표시로 용인했지만 오늘부터 만약 폭력 점거, 시위 사태가 벌어지면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이런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더 이상 폭력으로 의사진행이 방해되는 모습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근래 국회 곳곳에서 의사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9일엔 민주노동당 의원 5명이 2시간30여 분간 유선호 법사위원장실을 점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야가 합의한 감세 법안의 법사위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유 위원장은 결국 이틀 뒤로 회의를 미뤘다.

민노당은 전날에도 홍준표·원혜영(민주당)·권선택(선진과 창조의 모임) 원내대표가 모여 “12일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만들려는 것을 실력으로 막았다. 민노당 당원 20여 명이 구호를 외치자 홍준표 원내대표는 “깡패집단도 아니고…”라고 혀를 찼다. 5석의 정당이 274석의 정당들을 무력화한 셈이었다.

자유선진당도 다를 바 없었다. 민주당이 자신들을 ‘한나라당의 2중대’라고 비난했다는 사실을 들어 5일 일부 당직자가 국회 운영위원장실을 점거했다. 민주당도 5일 예산안조정소위 회의장에서 한때 농성을 벌였다.

18대 국회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선거가 끝나고도 국회 문을 열지 못하다 81일이나 지난 뒤 지각 개원했다. 이 과정에서도 물리적 충돌과 파행이 빈번했다.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시한(12월 2일)도 지키지 못했다. 18대 첫 정기국회는 이렇듯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9일 폐회됐다. 국회는 10일 다시 임시국회를 열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야당은 “의석수는 적지만 국민 여론이 우리의 주장을 동의하고 또 지지해 주고 있기 때문에 힘이 결코 작지 않다”(원혜영)며 강경 일변도다. “다수의 힘을 보여 주겠다”고 공언하는 한나라당은 몸집에 걸맞은 정치력이나 돌파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이와 관련, “비토(거부)의 정치가 오랫동안 자리 잡은 건 거대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력과 대화가 빈곤하기 때문”이라며 “동시에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토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용이 커진 요인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높지 않은 탓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정애 기자

[J-HOT]

▶ 세계 가전 광내고, 배를 움직이는 건 한국

▶ 18년전 연예인과 '환각매춘' 박연차의 과거

▶ "20대때 LG임원에 무작정 편지, 2천만원짜리 따내"

▶ 홍석천 "'월세 35' 단칸방서 8년만에 40억 모아"

▶ "은행원, 아마추어가 '이승엽 연봉' 받는게 말 되나"

▶ 바람피운것 아내에게 고백하면 안되는 이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