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세기를찾아서>7. 터키 이스탄불 - 소피아성당과 블루 모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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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스탄불은 먼 곳에 있습니다. 로마나 파리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식속에는 더 먼 곳에 있었습니다.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비잔틴이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흑해처럼 몽매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아득한 거리감과 무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게도 의문입니다. 이 곳에 와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나의 머리 속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2중의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중국의 벽이고 또 하나는 유럽의 벽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 역사의 곳곳에 각인된 바로 그 종속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이스탄불로 오는 여정 역시 이 2개의 장벽을 넘어온 셈입니다. 중국대륙을 건너고 런던·파리·아테네를 거쳐서 이스탄불에 도착하였기 때문입니다. 돌궐과 흉노는 중화(中華)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결코 그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으며 서구라는 높은 벽을 넘지 않고는 이슬람과 비잔틴의 역사를 대면할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보다 완고하고 알프스보다 더 높은 장벽이 우리의 생각을 덮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견고한 장벽의 반대쪽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두개의 벽을 넘어 이곳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사이에 앉아 이 엽서를 띄웁니다. 소피아 성당은 로마로부터 세계의 중심(Omphalion)을 이곳으로 옮겨 온 비잔틴 문명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경 32m의 돔을 지상 56m의 높이에 그것을 받치는 단 한개의 기둥도 없이 올려 놓은 불가사의의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그 유적만큼이나 많은 사화(史話)들이 쌓여 있습니다. 1453년 마호메트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 당시의 이야기들이 숱하게 전해옵니다. 배가 산을 넘는 등 무수한 무용담은 역사란 얼마나 파란만장한 쟁투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대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35년, 그 때까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던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벽면의 칠을 벗겨내자 그 속에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된 예수상과 가브리엘 천사 등 수많은 성화들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5백년 동안 잠자던 비잔틴의 찬란한 문명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벽면에 칠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일대 사건입니다.

3일간의 약탈이 허용되는 것이 이슬람의 관례였지만 마호메트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난 다음 바로 이 소피아 성당으로 말을 몰아 성당의 파괴를 금지시켰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를 파괴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이제부터는 이곳이 성당이 아니라 모스크라고 선언하고 일체의 약탈을 금지시켰습니다. 유럽문명의 정화(精華)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게는 이슬람의 그러한 관용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탄불은 공존과 대화의 도시입니다. 동(東)과 서(西), 고(古)와 금(今)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에 걸쳐있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입니다. 터키는 스스로 아시리아·그리스·페르시아·로마·비잔틴·오스만투르크 등 역대의 문명을 계승하고 있는 나라로 자부합니다. 카파도키아·에페수스·트로이 등지에는 지금도 그리스·로마의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터키를 모자이크의 나라라고 합니다.

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사원인 블루 모스크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터키의 역사에서는 이단에 대한 가혹한 박해의 역사보다는 다른 종교에 대하여 보여준 관대한 사례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손에 코란 한손에 칼'이라고 배웠던 서구적 사관이 부끄럽게 반성되는 곳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이 구절은 ‘한손에 코란 한손에 세금'정도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터키의 관용은 북만주에서부터 중국대륙·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에 걸치는 역사의 대장정 속에서 길러온 도량인지도 모릅니다. 대제국은 결코 칼이나 강제에 의하여 건설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이러한 내면의 애정이 관용과 대화로 개화할 수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인류사가 타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인간부재의 도정을 달려왔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블루 모스크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우람한 오케스트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2백88개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줄기가 99가지의 청색으로 장식된 공간속에서 현란한 빛의 향연을 연출합니다. 이것이 곧 이스탄불이 자부하는 과거와 현재, 동과 서의 거대한 합창이었습니다. 자기와 정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는 한 유학생의 인상적인 변화도 바로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넉넉한 포용력에서 연유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이 이스탄불로 나를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것은 이스탄불의 다양한 문명의 공존과 융화였습니다. 그러나 시종 내가 바라본 것은 나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두개의 장벽(障壁)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은 장벽을 쌓아놓고 있는가를 반성하여야 하며 이러한 반성에서부터 21세기를 열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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