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토포럼] 부활하는 대구·경북 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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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대구시 중리동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내 ㈜시마. 160여㎡의 작은 사무실 안에 갖가지 색상의 실 뭉치와 원단이 쌓여 있다. 연구원들이 천의 올을 일일이 풀어 분석하고 있다. 내년 겨울 남성 정장과 여성 정장용 원단을 개발하는 작업이다. 유행할 옷감의 소재를 미리 파악해 울·면 원사에 폴리에스테르·아크릴·아세테이트 등의 합성섬유사를 섞어 새로운 직물(울 교직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울의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 구김이 적고 물세탁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천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50억원. ‘갤럭시’ ‘로가디스’ 등 국내 유명 의류 브랜드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김지미(41·여) 대표는 “퓨전 음식처럼 다양한 재료(원사)를 잘 가공하면 좋은 기능성 직물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례 2. 대구시 신당동 성서산업단지의 ㈜원창. 기능성 섬유인 초경량 나일론 직물 분야의 선두 업체로 꼽힌다. 이 직물은 무게가 일반 나일론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질기고 통기성도 좋다. 가격은 일반 나일론 직물보다 2∼3배 비싸다. 지난해 매출액은 290억원. 미국의 ‘노스페이스’ ‘폴로’, 이탈리아의 ‘막스마라’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에 스포츠 의류용으로 납품하고 있다. 생산 원단의 80%는 수출한다. 채영백(34) 대표는 “연구개발(R&D)과 해외 마케팅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섬유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 섬유업계는 변화를 앞세워 거친 파고를 헤쳐나가고 있다. 일반 의류용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대량으로 짜내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기능성 부가가치가 높은 신소재 개발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세계 최대의 화섬직물 생산지’. 1990년대까지 대구의 산업을 설명할 때 붙었던 수식어다. 대구·경북의 섬유업체 수는 98년 말 3216개에서 2006년 말 2724개로 15.3% 줄었다. 섬유제품의 생산액과 수출액,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떨어졌다.

변화는 이런 상황 인식에서 시작됐다. 화학섬유 원사나 원단에 여러 가지 처리를 해 다양한 기능을 가진 섬유를 만들거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특수 섬유를 생산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직물을 생산하는 1100여 업체 중 70∼80%가 기능성 섬유나 산업용 섬유를 생산한다. 체온에 따라 시원하거나 따뜻하게 변하는 환자용 온도 조절 섬유, 음이온을 방출해 청량감을 주는 섬유 등 소재도 다양하다.

이런 노력 덕에 감소세를 보이던 수출액은 증가세로 돌아섰다. 2006년 지역 섬유류 수출액은 22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24억4500만 달러로 11.1% 늘었다. 장원규(48) 대구·경북섬유직물조합 기획조사부장은 “매출액·생산량은 적지만 경쟁력이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는 ‘강소(强小)’기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체 연구소를 두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판매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중소업체도 늘고 있다. ㈜시마는 정규 직원 20명 중 연구개발 인력이 5명이다. 김지미 대표는 “신소재 개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안도상(71)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회장은 “업체들이 다양한 기능성 섬유 개발에 매달리면서 대구 섬유업이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좀 더 노력하면 ‘대구 섬유’의 옛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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