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니블릿 영국 왕립외교연구소장 “한·미 FTA 비준 상당기간 미뤄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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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한한 영국 왕립외교연구소(일명 채텀 하우스) 로빈 니블릿(사진) 소장은 26일 중앙일보·중앙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양자 협정은 상당 기간 미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자동차산업에 대해서는 “무역수지 적자와 자동차산업을 보는 오바마와 미국인의 시각이 왜곡돼 있다”며 “챕터11에 따른 파산 보호(영업활동을 계속 유지하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는 파산 방식)를 겪고 나면 오히려 경쟁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텀 하우스는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외교 싱크탱크로 설립된 지 78년이 됐다.

만난 사람=노철수 중앙데일리 상임고문

-버락 오바마 정부에 유럽은 어떤 기대를 하나.

“유럽 국가들은 황금기였던 1991년 냉전 직후 때의 미국-대서양 관계가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유럽은 이번이 미국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금융 위기로 유럽의 리더십이 강화됐는가.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독의 근원이 있는 나라다. 반면 유럽은 금융 위기의 결과가 미치는 곳이지 문제의 근원은 아니다. 이는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다소 유리한 조건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내놓은 금융 구제안은 미국도 상당부분 참고해 따라 했다. 하지만 세계가 유럽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봐라, 우리가 결과적으로 잘한 것 아니냐. 파생상품을 엄격히 규제했고, 환율 개방도 안 했는데 우리 방식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번 금융 위기는 유럽의 리더십보다는 다극체제가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오바마는 선거 유세 때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여러 번 했다. 한·미 FTA 비준 전망은.

“오바마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양자 무역협정에 대해 매우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정권 초기에 대선 기간에 한 자신의 말을 쉽게 뒤집는데 따른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 대신 이미 비준이 끝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양자 협정을 재협상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양자 무역협정 대신 명분이 좋은 도하라운드 같은 다자 무역협상 타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의회에 구제안 마련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산업에 돈을 지원한다면 유럽도 그렇게 하겠다는 태세다.

“세계는 지금 자유무역 관점에서 매우 위험한 지역에 서 있다. 규제는 전보다 강화돼야 하지만 세계적인 돈의 흐름, 즉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계속돼야 한다. 미국이 자국 자동차산업이나 무역 적자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 자체가 왜곡돼 있다. 대중국 무역 적자 이면에서 누가 이득을 보는지 미국 정책 결정자 중 누구도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세워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내며, 미국 퇴직자펀드도 이들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다. 오바마의 무역관도 왜곡돼 있다.”

-자동차 빅3의 도산이 미국에겐 오히려 더 이득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자동차산업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 철강산업의 예를 보더라도 당시 기간산업인 철강을 파산하게 놔둘 수 없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철강산업은 ‘챕터 11’을 겪고 난 끝에 날씬해지고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빅3를 모두 망하게 하기엔 위험이 크지만 일부의 파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본다.”

-미국 자리를 대신할 지역적 금융 허브의 등장이 가능한가.

“비관적이다. 미국을 대신할 금융 허브의 등장은 5~10년 내에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카드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이 금융 위기 때문에 외교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 없어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카드는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설득에 유리하다. 또한 힐러리를 정부 밖에 두는 것보다는 안에 두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료 사회의 내분을 경계해야 한다. 인선 과정에서 오바마파가 힐러리 사람들에게 밀린다면 시끄러운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오바마의 신임 경제팀은 금융 위기 해소를 위한 적절한 인선인가.

“매우 적절한 선택과 배치다. 재무장관 내정자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은행 총재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내정자인 로렌스 서머스를 보자면 서머스는 국제금융에서 미국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이며, 가이트너는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실행가다.”

 정리=최지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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